[책마을] '맬서스의 저주' 산업혁명으로 풀린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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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
그레고리 클라크 지음|이은주 옮김|한스미디어|623쪽|3만2000원
그레고리 클라크 지음|이은주 옮김|한스미디어|623쪽|3만2000원
경제사는 언제나 흥미롭다. 역사적 대사건이었음에도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종종 발견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두가 정신 차리기 어려울 만큼 대사건의 와중에 빠졌을 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그 인과관계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공황과 비견되는 지금의 금융 위기도 마찬가지다. 이 위기는 왜 일어났고,지금 우리는 어디쯤 왔는지,위기 이후의 위기는 과연 없는 것인지….또 금융 위기를 통해 급격히 일어나고 있는 부의 이동,빈부 격차,양극화,이에 대응하느라 부심하는 각국의 경제 정책들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을 지금의 경제학자들이 곧바로 답할 수 있는가. 경제학의 한계다. 아마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만 '아,그때 그게 그랬구나'라는 얘기들이 쏟아지고,무엇이 표피적 원인이었으며 무엇이 정말 구조적이고 근원적인 원인이었는지도 밝혀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경제사야말로 진정한 경제학'인지 모르겠다.
《맬서스,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는 한마디로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경제사다. 그것도 '부의 탄생' '빈부 격차'와 같은 경제학의 핵심 과제를 건드리고 있다. 저자는 죽은 경제학자 맬서스를 무덤에서 끌어 내고,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산업혁명을 끄집어 낸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인류가 지나온 역사와 1인당 국민소득을 대변하는 그래프 하나로 간단히 설명해 버린다.
인류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른바 '맬서스의 덫'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1800년 이전만 해도 인류의 소득 증가는 인구 증가에 번번이 가로막혀 사실상 석기 시대나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발생한 산업혁명은 맬서스의 저주를 단번에 풀어 버렸다. 부의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질문들을 마구 던진다. 산업혁명은 어떻게 인류를 맬서스의 함정에서 구해 낼 수 있었던가? 왜 산업혁명은 다른 나라가 아닌 영국에서,그것도 1800년께 이르러서야 일어났나? 왜 산업혁명에도 불구하고 부국과 빈국이 이렇게 갈렸는가? 그렇다면 그 해법은 무엇인가?
산업혁명을 설명하는 정사나 야사는 많다. 기술 혁명을 말하는 이들이 있고,정치 법률 경제 등의 제도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저자는 더 본질적 측면인 문화로 눈을 돌린다. 인류가 폭력,성급함 등 수렵 채집인의 속성을 버리고 근면,합리성,교육 등 경제 성장에 적합한 속성으로 진화한 문화적 변화에 주목한 것이다.
부의 창출과 이동,빈부 격차에 대한 기존의 접근법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의문을 갖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경제학자인지 인류학자인지 헷갈릴 정도의 신선한 시각,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한 방대한 자료는 경제학자의 영역이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세상을 하나의 틀로 보는 것이 얼마나 좁은 것인가.
이 책의 원제는 'A Farewell to Alms'이다. 부국들이 빈국들에 시혜를 베풀듯 주는 돈을 'A Farewell to Arms(무기여 잘 있거라)'에 빗댄 것이다. 원조인지 부국의 이익 확대용인지 헷갈리게 하는 그런 돈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부국들이 빈국의 이주자들을 받아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부국들의 겉과 속이 다른 점을 예리하게 비판한 것이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지금 세계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부국들을 포함해 과연 행복 지수가 증가하고 있는가.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는 이 모든 모순의 집합체를 상징한다.
안현실 논설위원 ·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대공황과 비견되는 지금의 금융 위기도 마찬가지다. 이 위기는 왜 일어났고,지금 우리는 어디쯤 왔는지,위기 이후의 위기는 과연 없는 것인지….또 금융 위기를 통해 급격히 일어나고 있는 부의 이동,빈부 격차,양극화,이에 대응하느라 부심하는 각국의 경제 정책들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을 지금의 경제학자들이 곧바로 답할 수 있는가. 경제학의 한계다. 아마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만 '아,그때 그게 그랬구나'라는 얘기들이 쏟아지고,무엇이 표피적 원인이었으며 무엇이 정말 구조적이고 근원적인 원인이었는지도 밝혀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경제사야말로 진정한 경제학'인지 모르겠다.
《맬서스,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는 한마디로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경제사다. 그것도 '부의 탄생' '빈부 격차'와 같은 경제학의 핵심 과제를 건드리고 있다. 저자는 죽은 경제학자 맬서스를 무덤에서 끌어 내고,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산업혁명을 끄집어 낸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인류가 지나온 역사와 1인당 국민소득을 대변하는 그래프 하나로 간단히 설명해 버린다.
인류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른바 '맬서스의 덫'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1800년 이전만 해도 인류의 소득 증가는 인구 증가에 번번이 가로막혀 사실상 석기 시대나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발생한 산업혁명은 맬서스의 저주를 단번에 풀어 버렸다. 부의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질문들을 마구 던진다. 산업혁명은 어떻게 인류를 맬서스의 함정에서 구해 낼 수 있었던가? 왜 산업혁명은 다른 나라가 아닌 영국에서,그것도 1800년께 이르러서야 일어났나? 왜 산업혁명에도 불구하고 부국과 빈국이 이렇게 갈렸는가? 그렇다면 그 해법은 무엇인가?
산업혁명을 설명하는 정사나 야사는 많다. 기술 혁명을 말하는 이들이 있고,정치 법률 경제 등의 제도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저자는 더 본질적 측면인 문화로 눈을 돌린다. 인류가 폭력,성급함 등 수렵 채집인의 속성을 버리고 근면,합리성,교육 등 경제 성장에 적합한 속성으로 진화한 문화적 변화에 주목한 것이다.
부의 창출과 이동,빈부 격차에 대한 기존의 접근법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의문을 갖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경제학자인지 인류학자인지 헷갈릴 정도의 신선한 시각,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한 방대한 자료는 경제학자의 영역이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세상을 하나의 틀로 보는 것이 얼마나 좁은 것인가.
이 책의 원제는 'A Farewell to Alms'이다. 부국들이 빈국들에 시혜를 베풀듯 주는 돈을 'A Farewell to Arms(무기여 잘 있거라)'에 빗댄 것이다. 원조인지 부국의 이익 확대용인지 헷갈리게 하는 그런 돈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부국들이 빈국의 이주자들을 받아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부국들의 겉과 속이 다른 점을 예리하게 비판한 것이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지금 세계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부국들을 포함해 과연 행복 지수가 증가하고 있는가.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는 이 모든 모순의 집합체를 상징한다.
안현실 논설위원 ·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