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경제학은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의 합리적 행동을 전제로 한다. 합리적인 경제 주체와 '보이지 않는 손'이 주재하는 조화로운 시장,이 두 개의 기둥으로 이뤄진 고전적 완미(完美)의 세계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세계가 깨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을 버렸고,그 빈 자리를 정부와 세금이 대신하고 있다.

합리적일 것 같은 인간은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며,결과가 뻔한데도 어리석은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을 최근에야 발견한 공로는 행동경제학에 있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이 인간 우행(愚行)의 수많은 사례를 찾아 내고 기록함으로써 우리의 진짜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만으로 끝나면 뭔가 아쉽다. 이런 문제 많은 인간의 행동과 의사 결정을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이끌 방법은 없을까?

《넛지》는 여기에 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다. 행동경제학의 신조에 따르면 인간의 선택은 그 가짓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합리성을 기대할 수 없다. 인간의 선택과 결정이란 체계적으로 안 맞게 돼 있고,유혹에 약하며,집단 동조 현상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해법은 무엇인가? 인간이 행동하는 기본틀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가령 바람직한 선택 대상은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하고,반대의 것은 구석에 처박아 둔다. 사람들은 눈에 잘 띄는 '바람직한 것'을 선택할 확률이 훨씬 높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학생들의 비만을 걱정하는 학교 구내 식당의 경우 당장 배식 진열을 바꾸기만 해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인간의 선택과 행동을 유도하는 방법을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을 '넛지(nudge)'라는 용어로 단순화하고 있다. '팔꿈치로 쿡쿡 찔러 주의를 주듯' 바람직한 선택을 유도한다는 의미에서다.

어떻게 보면 행동 주체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선택하도록 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한다. 자유주의와 개입주의는 상반된 개념이지만 저자들은 전혀 강제나 명령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다. (학교 구내 식당에서) 과일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은 넛지다. 그러나 정크 푸드를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다. "

분노에 가득 찬 이메일을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보낸 다음 후회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주 간단한 넛지의 예.센드 버튼을 누르기 전에 다음과 같은 경고 메시지가 뜬다. "이 메일은 무례한 내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정말 이 메일을 전송하시겠습니까?" 또는 "이 메일은 무례합니다. 24시간 후에 전송 입력을 다시 해야만 전송할 수 있습니다. "

이렇게 이메일 시스템을 간단히 업그레이드하기만 해도 세상은 훨씬 평화로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쓴 이메일의 내용을 누가 무례하다고 판단할 것이며,어떤 가치가 바람직한지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를 은근히 '넛지'하는 사람을 저자는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라고 부르는데,그가 빅 브러더 같은 괴물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완전하지 않은 개인을 전제로 한 자유주의'(최정규 경북대 교수)라는 모순이 여전히 남는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