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액션영화의 걸작 '본 아이덴티티'시리즈의 대본으로 할리우드 스타 각본가로 떠오른 토니 길로이.지난해 직접 쓴 시나리오로 감독에 데뷔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마이클 클레이튼'을 내놓은 데 이어 각본을 담당한 두 할리우드 범죄영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30일)와 '더블 스파이'(상영 중 · 사진)를 잇따라 선보인다.

길로이가 시나리오를 썼다는 사실만으로 러셀 크로,벤 에플렉,줄리아 로버츠,클라이브 오웬 등 세계적인 배우들이 흔쾌히 출연했을 정도로 두 작품은 탄탄한 구성과 긴장감 넘치는 오락영화로 만들어졌다.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촉망받는 정치인(벤 에플렉)의 보좌관이자 정부(情婦)가 피살당한 사건을 둘러싼 권력과 군산복합체 간 유착 관계를 파헤치는 신문기자(러셀 크로)의 활약을 그렸다.

사건 취재 과정에서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기자도 목숨을 건 추격전을 벌이는 과정이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안보 업무를 민영화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기업과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이용해 이들로부터 떡고물을 챙기는 비윤리적 정치가의 모습이 포착된다.

언론도 깨끗하지만 않다. 신문사 경영진은 판매 부수 확대를 위해 정치권력과 기업 사이의 음모를 파헤치라고 기자들에게 지시하기보다는 정치인의 '섹스스캔들' 기사를 요구한다. 언론인과 정치인 간 친분도 국민의 알권리를 가로막는다.

길로이가 감독까지 겸한 '더블 스파이'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로맨스 첩보물이다. 은밀한 연인 관계를 유지해 온 전직 CIA요원 클레어(줄리아 로버츠)와 전직 MI6 요원 레이(클라이브 오웬)는 라이벌 기업 'B&R'와 '에퀴크롬'에서 각각 산업 스파이로 고용돼 일하던 중 양사에서 신제품 기밀을 함께 빼돌려 4000만달러를 챙기려는 작전에 돌입한다.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는 '직업병'이 문제다. 두 연인은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하기를 반복한다.

두 영화는 '본'시리즈처럼 건조하지만 품격과 우아함을 견지하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드라마와 절제된 연출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두 신작은 '본'시리즈에 비해 빠르고 눈부신 액션 장면은 적지만 등장인물 간 얽히고 설킨 관계를 바탕으로 풀어내는 심리 게임은 짜임새가 있다. 각자가 처한 입장에서 행동과 사고의 반경이 결정되지만,때때로 그 범주 밖에서 관조하도록 구성돼 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