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55) 동성중공업 ‥ "하청업체로 안주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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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차량 세계시장서 팔 것"
"언제까지 하청업체로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동성중공업'이란 브랜드를 단 철도차량을 세계시장에 팔아야 한다. "
김규동 대표가 80여명의 직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회사 비전이다. 부친이 피땀으로 일군 사업을 물려받은 그에게 남겨진 숙제이기도 하다.
2007년 6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이달 초 회사 이름을 동성중공업으로 바꿨다. 철도차량 차체 관련 부품제조 업체가 아니라 완성차 업체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지난 3월에는 기술연구소도 설립했다. 30여년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철도차량 차체 등 하드웨어 기술력은 뒤처질 게 없지만,철도차량의 인테리어와 전기부품 등 전장품 제조기술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해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김인식 회장의 1남2녀 중 장남인 김 대표는 철이 들면서부터 가업을 물려받기로 결심했다. 경상대에서 경영학과를 전공한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부친은 아들의 사업 참여를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김 회장은 "지난 30년을 돌이켜 보면 물불을 겁내지 않고 지낸 세월이었다. 내 대에서 사업을 접고,자식에게는 이 고생 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수백번도 넘게 했다. 그래서 아들이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장교가 되거나,평범한 직장인이 되길 원했다"고 회고했다.
김 대표는 대학생 때부터 회사 아르바이트를 자처하는 등 부친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1996년 군을 제대한 후 평사원으로 입사해 화장실 청소 등을 군말없이 하는 아들을 묵묵히 지켜보던 김 회장은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김 대표가 회사에 들어온 이후 주먹구구식 경영도 틀이 잡혀 갔다. 회사의 전산화를 비롯해 업무 안전 등 직원교육을 정례화하고,직원 결혼기념일 사내 이벤트 등 소소한 사회복지 제도를 도입했다.
김 대표에 대한 신뢰가 쌓이자 김 회장은 혹독한 경영수업을 시켰다. 김 회장이 최우선으로 꼽은 것은 현장교육.김 회장은 "생산현장을 모르는 2세 경영자는 예외없이 망한다"며 김 대표를 공장에 투입했다.
밑바닥부터 시작한 김 대표의 경영수업은 만 12년이 걸렸다.
김 회장은 2007년 아들에게 대표이사직을 물려주고,경영 전권을 맡겼다. 이때부터 회사는 큰 변화를 시작한다. 그는 돈 되는 사업은 뭐든지 했던 부친의 경영 방식과 달리 용접 판금 절삭 등 임가공 형태의 다른 사업들은 순차적으로 접고 철도차량에만 집중하고 있다.
김규동 대표가 80여명의 직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회사 비전이다. 부친이 피땀으로 일군 사업을 물려받은 그에게 남겨진 숙제이기도 하다.
2007년 6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이달 초 회사 이름을 동성중공업으로 바꿨다. 철도차량 차체 관련 부품제조 업체가 아니라 완성차 업체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지난 3월에는 기술연구소도 설립했다. 30여년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철도차량 차체 등 하드웨어 기술력은 뒤처질 게 없지만,철도차량의 인테리어와 전기부품 등 전장품 제조기술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해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김인식 회장의 1남2녀 중 장남인 김 대표는 철이 들면서부터 가업을 물려받기로 결심했다. 경상대에서 경영학과를 전공한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부친은 아들의 사업 참여를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김 회장은 "지난 30년을 돌이켜 보면 물불을 겁내지 않고 지낸 세월이었다. 내 대에서 사업을 접고,자식에게는 이 고생 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수백번도 넘게 했다. 그래서 아들이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장교가 되거나,평범한 직장인이 되길 원했다"고 회고했다.
김 대표는 대학생 때부터 회사 아르바이트를 자처하는 등 부친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1996년 군을 제대한 후 평사원으로 입사해 화장실 청소 등을 군말없이 하는 아들을 묵묵히 지켜보던 김 회장은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김 대표가 회사에 들어온 이후 주먹구구식 경영도 틀이 잡혀 갔다. 회사의 전산화를 비롯해 업무 안전 등 직원교육을 정례화하고,직원 결혼기념일 사내 이벤트 등 소소한 사회복지 제도를 도입했다.
김 대표에 대한 신뢰가 쌓이자 김 회장은 혹독한 경영수업을 시켰다. 김 회장이 최우선으로 꼽은 것은 현장교육.김 회장은 "생산현장을 모르는 2세 경영자는 예외없이 망한다"며 김 대표를 공장에 투입했다.
밑바닥부터 시작한 김 대표의 경영수업은 만 12년이 걸렸다.
김 회장은 2007년 아들에게 대표이사직을 물려주고,경영 전권을 맡겼다. 이때부터 회사는 큰 변화를 시작한다. 그는 돈 되는 사업은 뭐든지 했던 부친의 경영 방식과 달리 용접 판금 절삭 등 임가공 형태의 다른 사업들은 순차적으로 접고 철도차량에만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