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는 '과거'는 잘 맞히지만 정작 궁금한 '미래'에 대해서는 에둘러 말할 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과거는 이미 결정된 '화석'이지만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생물'이기 때문이다. 하기 나름에 따라 달라질 미래를 맞힐 재간은 없다. 우리 앞에 놓인 "언제쯤 경제가 나아질 것이냐"는 예측도 마찬가지다. 경제는 국민 경제활동의 총화(總和)이기 때문에,경기회복은 결국은 우리 하기에 달렸다.

지난 1월 초 청와대 지하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이 꾸며졌다. 당시 경제위기 상황을 전시에 빗대 '워룸(war room)'으로 이름을 붙였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경제관련 최고 회의체다. 워룸을 예고나 한 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위기'란 단어를 29차례 언급했다. '전대미문의 위기'라는 표현도 동원됐다. 워룸 첫 회의 후 "공(위기)은 여기서 멈춘다(극복된다)"는 미국 트루먼 전 대통령의 말이 인용될 만큼 위기 극복의 자신감이 표출된 것으로 전언된다. 그러나 '기한'을 특정하지 않고 '의제'를 좁히지 않은 워룸은 처음부터 운영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비상시기인 만큼 정부가 솔선해 위기를 추스르겠다는 워룸의 '취지'는 '지하 벙커'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가려 국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했다. 대신 필요 이상으로 위기를 조장한다는 야권의 비판을 초래했다. 그리고 진짜 '숨겨진 위기'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국민들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3월 위기설'은 이러한 의구심을 배경으로 세를 늘렸다. '3월 위기설'의 요체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달러로 바꿔 금리가 높은 해외에 투자했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3월 말 결산을 앞두고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나라에 유동성 위기가 닥친다는 '취약한' 시나리오였다. '3월 위기설'은 '9월 위기설'과 같이 '설'로 끝났지만,위기는 그렇게 한 번 더 부추겨졌고 국민은 고통을 당했다. 워룸이 간접적으로 '위기설'을 부른 것이다.

'경제 워룸'은 패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의 역할은 분명해졌다.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위기 극복의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위기의 성격'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위기의 진원지는 우리가 아니기 때문에 IMF 위기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리경제의 기초체력이 견실하다는 '팩트'를 국민들이 공유할 필요가 있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가 과장은 아니지만,우리는 이미 1970년대에 '사회안전망'을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오일쇼크를 극복한 전력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저력'에 대한 확인만큼 위기 극복의 소중한 자산은 없다. 이제 지하벙커에 머무를 이유는 없다. 결연한 의지를 가질 때 '위기'는 상대적으로 작아지고,'위기의 물결'에 올라타야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는 용기의 말이 필요하다. 벙커에서의 대책회의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은 '민생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행동하는 리더십'에 더 목말라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책의 방향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포퓰리즘에 이끌려 '좌고우면'하지 말아야 한다. 위기 극복에 성공한 지도자는 공통적으로 '원칙'에 충실했다. 하이에크도 정책은 '원칙'의 문제라고 설파했다. 원칙에 충실해야 불확실성이 줄어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시장주의'의 원칙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경제는 기본적으로 '심리'이기 때문에 위기 극복의 리더십은 '경제하려는 의지'를 되살리는 것으로 요약된다. 리더십은 이벤트가 아니다. 보여주기 식 워룸의 정책사고를 버려야 한다. 지금 지하벙커에서 나와야 한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