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루키' '괴물'….김경태(23 · 신한은행)가 프로로 전향한 직후인 2007년에만 해도 그에게 따라붙던 수식어였다. 그런 김경태가 지금은 '평범한 선수'에 머무르고 있다. 그가 우승을 한 것이 까마득한 옛일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아마추어 무대 석권 후 프로가 돼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신지애와 대조적인 행보다.

김경태는 2006년 한 · 일 아마추어선수권대회를 제패하고 국내 오픈대회에서 '프로 형님'들을 제치고 2승(포카리에너젠오픈 · 삼성베네스트오픈)을 거뒀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개인 · 단체전을 석권한 뒤 프로로 전향하자 주위에서는 최경주를 이어갈 한국 남자골프의 '차세대 스타'가 나왔다며 한껏 추켜세웠다.

김경태는 그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프로 전향 후 첫 번째(토마토저축은행오픈) 두 번째(GS칼텍스매경오픈) 대회에서 잇따라 우승컵을 안았다. 7월에는 중국에서 열린 삼능애플시티오픈마저 제패하며 '간단히' 3승을 올렸다. 그해 출전한 14개 대회 중 10개 대회에서 '톱10'에 들며 한국프로골프 상금왕 · 다승왕 · MVP를 휩쓸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다 되도록 김경태의 우승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2008년 초에는 국내외 6개 대회에 나가 다섯 차례나 커트 탈락하는 부진을 보였다. 그때 '아마추어 스코어'인 80타를 기록한 것만도 세 번이나 됐다. 지난해 일본 쓰루야오픈에서 2위,에머슨퍼시픽 돗토리현오픈에서 4위를 했지만 그린 재킷과는 인연이 없었다.

"루키 연도인 2007년을 화려하게 보낸 뒤 그 이듬해 더 잘 해보려고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거리를 늘리려고 스윙 아크를 크게 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 변화에 대한 적응 기간이 길어지면서 성적도,자신감도 낮아지고 말았어요. 2007년 7월 이후 인연을 맺지 못한 우승컵을 빨리 안아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봅니다. "

그런 각오 덕분일까. 김경태는 23일 제주 핀크스GC(파72)에서 열린 유러피언 · 아시안PGA투어 발렌타인챔피언십 첫날 3언더파 69타의 공동 21위로 상큼하게 출발했다. 7언더파 65타로 공동 선두인 마크 브라운(뉴질랜드) 곤잘로 카스타노(스페인)와는 4타차다. 약 2년간의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벗어나 부활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것.특히 정교한 샷을 구사하는 그에게는 페어웨이가 좁고 러프는 아주 깊은 코스 셋업이 오히려 좋은 환경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일시적인 부진을 겪고 있는 아마추어 골퍼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슬럼프라 싶으면 쇼트게임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또 낮은 볼이나 페이드 등 자신있는 구질 하나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위기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샷을 할 수 있습니다. "

한편,출전선수 중 세계랭킹이 가장 높은 헨릭 스텐손(스웨덴 · 9위)과 메이저 대회 3승의 어니 엘스(남아공)는 4언더파 68타로 공동 9위로 출발했다. 한국 선수가운데는 강경남(26 · 삼화저축은행)이 6언더파 66타를 기록,공동 3위로 첫날 가장 잘쳤다.

/제주=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