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중은행들이 잇달아 외화 차입에 성공하고 있지만 정작 들여온 달러를 굴릴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에 빠졌다. 향후 국제 금융시장이 다시 경색될 가능성에 대비,분위기가 좋을 때 외화 유동성을 대거 확보했지만 운용할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은 이 때문에 일부 외화자금을 조달금리보다도 낮은 이자로 대출해 주거나 현금으로 갖고 있어 외화자금 부문에서 역마진이 우려되고 있다.

23일 금융계에 따르면 대외채무차환율(신규조달외화/만기도래외화채무)은 최근 국내 은행들이 잇달아 외화자금을 도입함에 따라 지난달 106%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10월(54%)에 비해 두 배 이상 좋아졌고 올 1월(87%)에 비해서도 현격히 개선됐다.

예컨대 하나은행은 이달 초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아 10억달러 외화채권을 발행했다. 기업은행도 자체 신용으로 10억달러를 빌렸다. 신한은행은 지난달에만 8억달러를 조달했고 7억달러가량의 한도대출로 비상 유동성도 확보해놨다. 우리은행도 올 들어 4억달러의 외채를 들여왔다. 여기에다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외화유동성 부족에 대한 우려가 수그러들자 은행들은 외화자산 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문제는 이들 은행의 외화자금 조달금리가 리보(LIBOR)에 가산금리 500bp~600bp(1bp=0.01%포인트)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2007년 상반기 수준(가산금리 50bp안팎)에 비해 상당히 높아진 반면 돈을 굴릴만한 곳은 크게 줄었다는 사실이다. 은행들은 대개 보유 외화를 외화대출과 수출입금융지원에 사용하는데,이 중 수출입금융의 경우 무역량이 크게 줄면서 수요가 급감했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만기 도래한 수출입금융 지원자금 38억달러 중 6억달러를 회수키로 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남는 돈을 은행들끼리 주고 받으며 운용하기에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대부분 외화차입이 장기로 이뤄지는데 은행 간 거래는 단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은행 간 외화거래 금리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에서 소화가 되지 않는 외화는 홍콩 머니마켓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금리가 리보 수준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외화차입을 중단할 수도 없다는 게 은행들의 고민이다. 자금 사정이 다소 호전됐을 뿐 완전히 풀렸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한국은행도 달러가뭄이 다소 해소됐다고 보고 시중에 공급했던 외화자금을 조금씩 회수하고 있어 자체적으로 여유자금을 유지할 필요성이 더 높아졌다.

또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분간은 수익성 측면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유동성을 유지해야 갑자기 시장이 경색되는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창재/강동균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