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방법원 판사가 10번 판결을 내렸는데 고등법원이 10번 다 원심을 파기했어요.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죠."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한 검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관들의 판결에 수긍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며 이같이 언성을 높였다. 이른바 '고무줄'판결,'독불장군식'판결에 대해 작정하고 뱉어낸 쓴 소리였다. 비록 판사와 검사 양측은 '힘겨루기'관계이긴 하지만 법조계 한솥밥을 먹은 사이에도 사법불신은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해도 아직도 법조계에서는 법원 판결에 대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복불복'이라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전관 출신의 변호사를 고용하거나,운좋게 관대한 법관을 만나면 형량이 크게 낮아진다는 의혹이 여전하다. 영장 발부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지방법원 판사는 "영장기각률이 높은 판사가 근무할 때는 검사들이 영장청구를 잘 안한다"고 말했다. 같은 영장이라도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발부여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판결은 법관 개인이 자신의 양심에 충실하게 판단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예측가능한 상식선을 벗어나면서 억울함을 느끼는 피의자나 피해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점에서 상당수 국민들은 대법원이 지난 24일 발표한 '양형 기준안'을 크게 반기고 있다. 양형 기준안은 법정형 내에서 법관이 재량으로 정할 수 있는 선고형의 기준을 정해놓은 것.양형 기준안 도입으로 판사들 간 양형 편차가 크게 줄어들어 판결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것이라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문제는 양형기준이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양형기준에서 벗어난 판결을 내릴 때는 판결문에 그 이유를 명시해야 하는 정도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법관들이 재량권을 축소당한 데 반발해 양형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면 기준이 사문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재판은 판사의 이름이 아닌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으로,국민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이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국민들은 이번 대법원의 양형기준안 도입을 계기로 법질서 회복의 최후보루인 법관들이 사법 불신을 타파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