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학습효과? 주식·부동산 '대박' 기대 커지는데…
지난해 9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폭락했던 주가와 부동산가격이 최근 반등하면서 외환위기 직후처럼 향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과 정부가 경기 추락을 막기 위해 적잖은 돈을 푼 여파로 과잉 유동성 논란마저 빚어지면서 서둘러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외환위기 직후엔 수직 상승

한국에 외환위기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1997년 7월까지만 하더라도 종합주가지수(코스피지수)는 700을 웃돌았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그해 12월24일 주가는 350선으로 반토막났다. 그리고 구조조정 방안이 모색되던 다음 해 6월 280선까지 추락했다.

이후 주가는 드라마틱하게 튀어올랐다. 1998년 말 560선까지 올랐으며 1999년 7월 1000을 돌파했다. 위기가 닥친 1997년 12월24일을 기점으로 했을 때 1년7개월 만에 3배가량 오른 것이다. 바닥인 1998년 6월 기준으론 4배 가까이 뛰었다.

부동산가격도 흐름은 비슷하다. 국민은행연구소에 따르면 서울 강남(한강 이남의 11개구)의 아파트가격은 1998년 13.5% 하락했다가 이듬해 15.3% 상승해 하락폭을 모두 만회했다. 2000년에 5% 상승으로 진정됐지만 2001년 22.0%,2002년 35.2%,2003년 14.3% 등으로 급등했다.

반면 금리 흐름은 반대다. 1997년 말과 1998년 초엔 초우량기업마저 회사채 발행금리가 연30%에 육박했다. 지표금리인 국고채 3년물의 금리도 연 18%에 육박했다. 이후 한은이 기준금리(당시엔 콜금리)를 지속적으로 낮추면서 1999년 초엔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연 6%대로 떨어졌다.

◆최근에도 자산가격 반등세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문제가 본격화하기 전인 2007년 11월 코스피지수는 사상최고치인 2085를 기록했다. 하지만 금융부실 문제가 확산되자 미끄럼틀을 타기 시작해 2008년 8월 말 1400선까지 떨어졌고 9월 중순 리먼이 파산하자 투매양상이 빚어져 10월 말 1000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이후부터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올해 3월부터 본격적인 반등이 시작돼 1350선까지 회복됐다. 저점 대비 40%가량 오른 것이다.

부동산가격은 전체적으로 아직까지 내림세다. 국민은행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주택매매가격은 올 들어 3월 말까지 1.0% 하락했고 서울의 한강 이남 11개 구의 아파트가격도 지난해 1.9% 내린 데 이어 올 들어서도 1.1% 떨어졌다. 그러나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3구의 움직임은 확연히 다르다.

강남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해 6월부터 올 1월까지 계속해서 떨어졌으나 2월엔 0.9% 올랐고 3월에도 하락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강남3구의 재건축대상 아파트 가격은 최근 두 달 새 30%가량 치솟아 고점 대비 90%수준까지 회복한 것으로 부동산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금리는 한은이 지난해 10월부터 정책금리를 떨어뜨리는 여파로 국고채 3년물이 연 4%아래에 머물러 있는 등 사상 초유의 저금리가 이어지고 있다.

◆10년 전과는 180도 다르다

김재천 한은 부총재보는 "위기 이후 초반 국면을 살펴봤을 때 반등하는 모습은 외환위기 이후와 유사하다"면서도 "하지만 앞으로 자산가격의 움직임은 상당히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재보는 "외환위기 때와 지금은 위기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각종 가격지표의 모습도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0년 전엔 위기가 한국 등 일부에만 국한됐으며 전 세계 경제가 견조해 한국의 실물경제가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 한국이 -6.9%의 뒷걸음질 성장을 보인 1998년 미국의 성장률은 4.2%에 이르렀다. 미국의 고성장은 이후에도 이어져 1999년엔 4.5%,2000년에 3.7%였다. 중국도 1998년부터 2000년까지 7.8%,7.6%,8.4%의 성장을 이어갔으며 유로지역 역시 2.8%(1998년),3.0%(1999년),3.8%(2000년) 등으로 높은 성장세였다. 글로벌 경제가 호황이다보니 한국의 수출은 호조를 보였으며 IT(정보기술)붐까지 더해져 1999년과 2000년 한국의 성장률은 9.5%와 8.5%로 치솟았다.

하지만 올해 전 세계 경제는 -1.3%의 마이너스 성장이 전망(IMF)되고 있으며 주요국의 성장률은 이보다 더 낮다. 내년엔 소폭 회복되겠지만 속도는 늦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성장률은 올해 -2.4%,내년 3.5%(한은 전망)로 점쳐지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외환위기 당시엔 실물경제 회복이 빠른 속도로 이뤄졌지만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밝혔다. 유 상무는 "주가를 보면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홀로 상승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오히려 실물이 받침이 안되는 실망감에 큰 폭 하락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은행연구소도 올해 부동산가격에 대해 횡보세 내지 하향안정세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나찬휘 부동산연구팀장은 "주택가격은 전체적으로 실물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데 실물경제의 회복이 더딜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어서 부동산가격의 상승 추세 전환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나 팀장은 시중자금의 부동산시장 유입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자금흐름이 경기사이클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 상무는 최근 금융시장이나 자산시장에서의 유동성장세가 자산가격의 적절한 상승→소비 증가→수요 증가→기업 생산 증가→투자 확대→경기 회복의 선순환구조를 그리는 게 최선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대가 지나쳐 자산가격 상승세가 예상치에 미치지 못하거나 오히려 하락세로 돌아서면 충격이 가중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도 이러한 점을 의식해 자금을 풍부히 공급하고 저금리를 유지하는 등의 확장적(경기부양적) 통화신용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