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제주도의 한 골프장에선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 번 쳐 보세요. 이제 골프도 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못 친다니까 그러네."

상장을 끝내고 들떠 있던 메가스터디 직원 및 강사들은 손주은 대표(48)에게 골프 합류를 강권했다. 줄곧 관광을 고집하던 손 대표는 결국 이들 등쌀에 못이겨 "그럼 한번 쳐 볼까"하며 티박스에 올라섰다. 엉겁결에 머리를 얹은(?) 손 대표는 그 후로도 연습장에 간 적이 없다. 아무도 폼을 잡아준 적 없어 스스로 '엉터리 골프'라고 말한다. 혼자 책으로,느낌으로 배우고 익힌 풀뿌리 골퍼다. 하지만 그는 지금 80타대 후반을 친다.

비결은 뛰어난 운동신경과 엄청난 집중력,그리고 자신감에 있다. 작은 키에 배까지 나온 용모와 달리,사실 그는 야구 축구 당구 등 모든 구기 종목에 능한 스포츠맨이다. 어려서 축구는 하루 14시간씩 할 정도로 좋아했고 당구는 한때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그는 부족한 골프 연습을 자신감과 집중력으로 극복했다고 했다. 손 대표는 그렇게 메가스터디를 회사 설립 9년 만에 시가총액 1조3600억원이 넘는,사교육 업계의 최강자로 이끌어왔다.

◆24시간을 몰두하는 에너지

손 대표는 뭔가를 시작하면 하루 24시간을 몽땅 쏟아붓는 정력가다. 그는 1990년대 학원강사로 활동하며 1주일에 60~70시간씩 강의를 했다. 하루에 10시간이 넘었다. 학생들에게 문제풀이를 시켜 놓은 뒤 교무실에서 5분 만에 밥을 입에 몰아넣고 돌아와 다시 강의를 했다. 그의 표현을 빌면 '목숨을 걸고' 강의했다. 성격도 불같아서 강의실 책 · 걸상을 집어던진 적도 종종 있었다.

학원강사 시절 그의 신념은 독특했다. 가르치는 학생은 모두 1 대 1로 상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들과의 약속을 새벽 1시,새벽 2시,심지어 새벽 4시에도 잡았다. 남는 시간이 그것뿐이었다. 이 때문에 건강을 해치기도 했지만 요즘도 그는 새벽 4시에나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프롬과 마르쿠제가 스승

손 대표의 사교육 사업은 크게 네 시기로 나뉜다. 서울대 서양사학과(81학번) 재학 때 고액 과외로 사교육 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그는 1990년 서울 양재동에 한번에 수십명을 가르치는 작은 학원을 차렸다. 그리고 1997년 한번에 수백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 강의를 시작했다. 이어 2000년 메가스터디를 설립,인터넷 강의(인강)를 사업모델로 만들었다. 한 명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가 지금은 수십만명이 동시에 듣는 강의로 확장된 것이다.

그에겐 이 과정이 모두 '사필귀정의 선택'이었다. 대학 시절 읽은 라인홀트 니부어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이후 그의 삶을 바꿔놨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많은 돈을 받고 한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고액 과외는 자신과 그 학생에게는 선일 수 있지만 가난한 수많은 학생과 부모들에겐,즉 사회적으로는 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손 대표는 영향을 많이 받은 책으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1차원적 인간'을 꼽는다. 모두 자본주의적인 삶의 양식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그런 손 대표의 메가스터디가 한국에서 액면가 대비 가장 비싼 주식(액면가 500원짜리 1주의 28일 종가는 21만5000원)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정도 걸어야 성공이 따라온다

손 대표는 비난도 많이 받는다. 공교육을 망치는 사교육을 대표하는 인물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당하다. 인터넷 강의를 통해 교육비를 줄이는 사교육,지역 불평등을 줄이는 사교육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자긍심이 대단하다. 그래서 자신을 '깨끗한 장사꾼'이라고 표현한다. 장사꾼이라는 어감이 좋지 않으니 기왕이면 '장사님'으로 불러달라고 할 정도다. 그는 "흔히 성공을 위해 일하고 삶을 살아가지만 순서가 잘못됐다"며 "삶을 어떻게 살 것이냐가 먼저고 이 과정에서 일의 방식이 정해지고,그러다 성공을 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 대표의 삶은 도전과 성공의 연속이다. 1997년 그가 월 4000만~5000만원을 버는 소규모 학원을 버리고 과목당 3만~4만원짜리 대중 강의를 시작했을 때,케이블TV 홈쇼핑 광고를 보다가 떠올린 인터넷 학원 강의를 시작할 때 주위에선 모두 말렸다. 그는 "메가스터디는 100억원만 벌어도 엄청 성공이라고 생각했고,2003년 상장 때는 투자자들과 대립하다가 200억원만 주면 손 떼겠다고 했을 정도"라고 회고했다.

서울대 출신으로 '폼 안 나는' 학원강사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사람들은 일할 때 폼나는 걸 선택하려 하지만 나는 폼나는 것 대신 정직을 택했다"고 했다.

◆여전히 결정이 어렵고 두렵다

손 대표는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이 줄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입시교육도 점차 약화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포부는 크다. 작년 2023억원인 메가스터디 매출을 5년 내 5000억원,10년 내 1조원으로 키울 계획이다. 그래서 지난 1분기 매출이 전년 1분기 대비 20%,영업이익은 26%나 늘었지만,직원들에게 "비용을 줄여서 영업이익을 더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독려하기도 했다.

지금 그는 기존 사업의 약화된 추진력을 보강할 새로운 사업을 찾아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가장 두려운 일이 '결정'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직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무려 1시간 동안 다음 먹을거리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며 "전에는 15분이면 질문이 끝났는데 고무적인 일"이라고 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