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장재진 오리엔트 회장,"실험동물 20년 노하우로 신약개발 승부"
"실험동물 생산업체인 오리엔트바이오는 임상대행 업체인 바이오톡스텍의 백기사입니다. 우리의 고객사이자 경쟁회사인 바이오톡스텍과 공존하기 위해 지분을 사모으는 것입니다."

장재진(48·사진) 오리엔트바이오 회장은 최근 한경닷컴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동종업계인 바이오톡스텍의 '백기사'를 자처했다.

오리엔트바이오는 자회사를 통해 사들인 바이오톡스텍 주식이 71만8742주(9.07%)에서 79만7170주(10.06%)로 증가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오리엔트바이오는 지난 해 집중적으로 바이오톡스텍의 주식을 사모은 끝에 10% 넘는 주요주주가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바이오톡스텍의 주요사업은 임상시험 대행사업인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인데 이러한 CRO 사업은 오리엔트바이오의 주요사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같은 사업을 하는 업체의 지분이 10%가 넘다보니 적대적 M&A를 시도하고 있다는 시각이 생기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지만 장 회장은 "바이오톡스텍은 경쟁사지만 지분구조가 약한 것이 문제점"이라며 "국내 CRO 사업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고 함께 시장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에 지분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오리엔트바이오는 국내 최대 실험동물 생산업체로서 CRO까지 사업영역을 광범위하게 확장했고, 그 시장을 키우기 위해 경쟁사 지분을 늘렸다는 이야기다.

◆"독창적인 사업아이템을 찾아라"

장 회장은 1991년 실험동물 생산업체 바이오제노믹스를 설립했다. 이후 상장사인 오리엔트시계를 인수한 뒤 합병해 오리엔트바이오로 회사이름을 바꿨고 사업영역도 넓혔다. 그가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88년. 그의 나이 스물일곱살이었다.

"모두가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 사업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장 회장은 돈 될만한 사업을 찾아 나섰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틀어 박혀 이것 저것 구상도 했다.

"길을 지나 다니다보면 가로수, 가로등 등까지 모두가 사업아이템이 될 수 있습니다. 숨쉬는 것 어떤 것이든지 사업화할수 있죠. 하지만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키워낸다면 그 사업을 대기업에게 빼앗기 십상입니다."

그는 기술을 갖추되 대기업이 함부로 뛰어들 수 없는 사업꺼리를 찾기 시작한다. 사업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교보문고에 드나든 지 보름째. 그는 온갖 마케팅 책들을 섭렵한 뒤 전문서적까지 손을 댔다. 그러던 중 '실험동물의학'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서울대학교 수의학과의 이영순 교수가 쓴 책이었습니다. 실험동물에 대해 일본에서 공부한 내용을 쓴 내용이었죠. 책을 보면서 이 실험동물을 우리나라에서 뿌리내려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그는 마음속의 결심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장 회장은 다음날 경기도 수원에 있는 서울대학교 수의학과로 달려가 이 교수를 만났다.

"실험동물을 사업아이템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이 교수님도 '권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더군요.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고 기술도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전문가도 마다한다면 이게 사업이 되겠다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정부 산하 연구소중 4개 기관이 실험동물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자체적인 실험을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일반 업체들이 상용화한 실험동물은 수준 이하였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초에 유행성출혈열의 일종인 '한탄바이러스'가 번졌던 것도 실험동물의 위생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었다.

"1991년 바이오제노믹스를 설립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모체를 받아 대구에 위생적인 실험동물 생산설비를 만들었습니다. 생산이 순조롭게 진행됐고 판매도 시작했죠."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하던 중 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국내 제약사를 상대로 실험동물을 판매하던 중 동아제약의 K차장을 만나게 된다. K차장은 실험용 쥐들의 유전적 배경인 오리진(origine)을 문제 삼았다. 족보가 없는 쥐는 실험용으로 소용없고 이를 통해 얻은 결과는 국제적으로 통용되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1992년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여만에 모든 설비를 철수하고 그는 빚만 지게 된다.

"당시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실험동물을 생산하던 때라 그냥 팔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업가의 양심상 그럴수는 없었죠. 결국엔 모든걸 포기하고 실험동물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위해 떠났습니다."

장 회장은 중국과 영국, 일본 등지에서 실험동물에 대한 이론은 물론 시장현황까지 닥치는대로 공부한다. 실험동물 대가인 중국의 조호셍 박사를 비롯해 영국의 실험동물 기업인 B&K그룹 벤틴 회장 등을 만나 실험동물에 대한 노하우를 익히게 된다.

이렇게 공부를 마치고 1994년 귀국하게 된 장 회장은 실험동물 생산설비에 전 재산을 쏟아붇게 된다. 시설투자와 운영비로 들어간 돈이 3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설비가 완공될 무렵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장 회장에게 또다른 시련이 닥쳤다.

1999년 장 회장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려 하자 한 은행은 기술신용보증기금의 100% 보증서를 받아오면 조건부 승인을 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술신보는 장 회장에게 대출이 안되는 64가지 이유를 통보한다. 장 회장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64가지 질문에 답하고 대출을 받아내는 데 성공, 공장을 완공하게 된다.

"그 때 인생의 지옥을 맛본 것 같아요. 공장근로자들은 돈 안준다고 난리고 은행 문턱도 너무 높았습니다. 죽을 생각도 했는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대출이 안되는 64가지 이유에 답한 건 살기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인터뷰]장재진 오리엔트 회장,"실험동물 20년 노하우로 신약개발 승부"
◆가까스로 완성된 가평공장, 찰스리버의 눈에 들다

장 회장은 1999년 7월 경기도 가평공장을 완공했다. 그가 실험동물을 아이템으로 삼은 지 10년만이었다. 스웨덴 회사의 디자인에 영국회사의 최신식 시설을 갖췄다. 여기에 장 회장의 아이디어까지 보탰다.

공장을 가동한 장 회장은 회사의 운명을 바꿔놓을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전화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실험동물 회사인 찰스리버그룹의 부사장이었다. 그는 '구경만 하겠다'며 한국방문을 청했다. 찰스리버그룹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세계 최대 CRO기업이다.

다음 달인 8월에 입국한 찰스리버그룹의 부사장 일행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이라는 작은 국가에서 실험동물 시설을 최신식으로 지어놓은 것에 감탄한 것이다. 오리엔트바이오에 투자를 원했지만 장 회장은 사양의 뜻을 보였다.

"대기업한테 넘기지 않을 아이템을 찾고 10년의 온갖 고생을 했잖아요. 그 성과를 한 달만에 넘겨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대신 우리 회사(당시 바이오제노믹스)가 어느 정도 커나갈 때까지는 기술제휴를 하되 경영에 관여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찰스리버그룹은 결국 장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1999년 9월 찰스리버는 오리엔트바이오와 10년간의 기술적인 제휴를 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이때부터 생산된 실험동물은 국제유전자표준(IGS)규격품으로 인정됐다.

장 회장은 회사가 커지면서 쥐 뿐만 아니라 다른 실험 동물들도 생산할 필요를 느꼈다. 동시에 자금도 필요했다. 2003년 시계업체인 오리엔트를 인수하고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면서 사명도 '오리엔트바이오'로 바꿨다.

[인터뷰]장재진 오리엔트 회장,"실험동물 20년 노하우로 신약개발 승부"
◆상장과 함께 커진 꿈…CRO 사업에 신약개발까지


상장을 하면서 회장의 욕심은 한 단계 높아지게 된다. 전임상실험을 위해 실험동물을 공급하는 데에서 직접 전임상시험에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 CRO 사업에 욕심을 내면서 그가 손을 내민 곳은 찰스리버그룹였다.

실험동물 뿐만 아니라 CRO 사업에서도 자리잡고 있었던 찰스리버그룹은 장 회장에게 쉽게 기회를 줬다. 장 회장은 2003년 찰스리버에 CRO 기술이전건을 제안했고 이듬해인 2004년 세계 각지의 찰스리버 그룹 사장단들이 모인 자리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이 때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미국으로 출발하기 이틀전. 서울 목동 이대병원 앞에서 정차중이던 장 회장의 차를 5톤 트럭이 덮친 것이다. 병원으로 실려간 장 회장의 머리속엔 미국으로 날아가 프리젠테이션을 해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장 회장은 의사의 만류에도 깁스를 한 채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목에 깁스를 한 채 프리젠테이션을 마친 그에게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누군가는 찰스리버 그룹과 이미 기술제휴가 되어 있기 때문에 CRO 기술이전 계약도 쉽게 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무엇도 쉽게 이룬 것이 없었습니다. 목표를 향해 나가는 의지 하나만 믿고 달려온 겁니다."

2004년 6월 찰스리버와 CRO 기술제휴계약을 하면서 장 회장은 신약개발까지 욕심을 부리게 된다. 현재 임상 1상을 위한 비임상중인 발모치료제 ‘OND-1'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8년 11월 지식경제부가 바이오스타 프로젝트로 선정하기도 한 이 치료제는 내년 2010년 임상1상 실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기존의 실험동물 사업에서도 오리엔트바이오는 마우스(쥐)에 이어 비글견과 기니피그, 영장류 등까지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오리엔트가 창립한 것은 1959년. 오리엔트바이오는 올해가 창립 50주년을 맞게 됐다. 1999년 가평센터 설립과 함께 실험동물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0년이다. 찰스리버와의 기술제휴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기도 한다.

"찰스리버와 재계약이 원활히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에 문제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사업확대에 매진할 예정입니다."

3월결산인 오리엔트바이오는 다음달 말께 2008년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2007년 회계년도 매출액은 172억원, 11억원으로 전년대비 27.6%, 62.7%씩 늘어났다. 최근 발표된 지난 3분기 매출액 141억1000만원, 영업이익은 15억원으로 양호한 실적이 예상되고 있다.

글=한경닷컴 김하나 / 사진=한경닷컴 김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