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 · 기아자동차 회장이 계열사 경영진들에게 "환율 효과(원화가치 약세)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며 신발 끈을 다시 조여맬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최근 정 회장은 지난해 말 사업계획을 짤 때 1100원대로 잡은 원 · 달러 환율을 1300원대로 현실화하도록 지시하며 "환율 덕을 본 매출 및 이익증가분은 제외하고 경영상황을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매출 목표 등도 고환율에 맞춰 높이도록 했다.

정 회장의 이 같은 언급은 임직원들이 불황을 핑계로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거나 환율 효과에 취해 경영이 느슨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그룹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에쿠스 · 쏘렌토R와 같은 신차 효과에다 정부의 자동차 구매 지원에 힘입어 일부 공장의 가동시간이 늘어나고 있지만,여전히 경기 변수가 유동적이고 아킬레스건인 노사협상 등을 고려할 때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조금씩 재개되는 잔업과 특근

불황 여파로 지난해 말 이후 거의 자취를 감췄던 현대 · 기아차의 잔업과 특근이 일부 공장에서 재개되기 시작했다. 3월 이전만 해도 글로벌 인기 차종인 아반떼와 i30를 만드는 현대차 울산 3공장만 완전 가동했지만 최근엔 현대차 울산 5공장 에쿠스 · 제네시스 라인,울산 4공장 포터 라인,기아차 화성 1공장 모하비 · 쏘렌토R 라인 등도 다시 잔업에 들어갔다.

현대차 울산5공장은 신형 에쿠스가 본격 판매된 3월 말부터 잔업과 특근이 부활했다. 에쿠스는 누적 계약대수가 6300대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모으면서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울산 4공장 포터 라인과 아산공장 쏘나타 및 그랜저 라인도 잔업시간을 4시간 확대했다. 이에 따라 주 · 야 10시간씩 가동되는 라인이 2월 이전 2개 수준에서 최근 6개로 늘었다.

기아차 역시 5월부터 쏘울과 카렌스를 생산하는 광주 1공장의 잔업을 주 · 야 2시간씩 진행하고 토요일 특근도 월 4회 실시키로 노동조합과 합의했다. 중국 수출을 앞둔 쏘울 등은 최근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광주 3공장(봉고)도 특근이 부활된다. 신차 쏘렌토R를 조립하는 화성 1공장도 잔업을 재개,주 · 야간 10시간씩 완전 가동중이다.



◆선진시장 수요 여전히 바닥권

하지만 현대 · 기아차 일부 공장의 잔업 및 특근 재개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내수 시장에서의 신차 효과뿐 아니라 각국 정부의 소비진작책 효과 등이 맞물리면서 수요가 조금씩 되살아나는 데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일부 소형차 공장을 제외하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않다.

현대 · 기아차 내부에서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공장가동률을 1분기 70% 선에서 2분기엔 85% 정도로 높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환율과 글로벌 경기변수 등을 고려할 때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GM대우와 쌍용차 등의 경영 위기로 인해 내수시장에서 반사효과를 보는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시장 수요가 전체적으로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현대 · 기아차로선 부담이다. 고환율 효과에다 소형차가 선전하고 있다지만,중 · 대형차와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시장이 살아나지 않으면 매출 및 수익 확대가 힘들 수밖에 없다.

이제 갓 막을 올린 노조와의 임금 · 단체협상도 변수다. 노조 협조 아래 대대적인 감원 및 비용 축소에 들어간 도요타 등 경쟁사와 달리,금속노조 현대 · 기아차 지부는 기본급 대비 4.9% 임금인상과 함께 회사의 경영권을 제약하는 각종 단협조항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어 향후 협상 진행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 정 회장은 이에 따라 "GM 등 미국 빅3 자동차 메이커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위기의식을 갖고 독창적 마케팅 활동 등 적극적인 수출활성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