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이다. 따스한 햇살과 신록의 푸르름 속에 몸과 마음이 절로 들뜨는 때다. 그러나 달력 곳곳에 지뢰밭처럼 박혀 있는 온갖 '기념일'을 바라다 보면 가장들 입장에선 한숨이 절로 나오는 달이기도 하다.

어떤 선물을 해야 상대방으로부터 센스 있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을 하기 위해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뻔한 것,성의가 없어 보이는 것을 피해야 한다. 백화점 상품권이나 문화상품권은 실용적이긴 하지만 감동을 느끼게 하기엔 '2% 부족'한 듯 보인다.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순수해야 할 '선물'이 청탁을 바라는 '뇌물'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는 것.'벨루티'나 '존롭' 같은 멋진 구두,'브리오니'나 '키톤' 같은 명품 수트는 분명 센스 있는 선물이긴 하다. 그러나 이 비싼 명품들을 부담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이런 맥락에서 패셔너블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베스트 기프트 리스트'를 작성해봤다.


◆키덜트를 위한 디자인 제품

TV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탤런트 이시영이 남성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건담 마니아'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의외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는 편이다. 그래서 소년 감성을 건드리면 그 여운이 꽤 오래간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마이 페이보릿' 이란 가게가 있다. 큼지막한 통유리를 통해 맨 처음 보이는 것은 바로 전설의 '철완 아톰'.아기자기한 피규어 장난감부터 예쁜 그림책이나 아트북에 이르기까지,나이를 먹어서도 영원히 '소년'이고 싶은 어른을 위한 최고의 선물들이 이곳에 준비돼 있다. 또 압구정 로데오거리 안에 있는 '세컨드 호텔'은 재미있는 인테리어 제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가격도 착해 10만원 미만으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수두룩하다.

◆디자이너 체어

최근 '의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하지만 수백만원을 훌쩍 넘기는 에일린 그레이나 한스 웨그너의 의자는 말 그대로 '드림 리스트'일 뿐이다. 이럴 때는 아쉬운 대로 리프로덕션 모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특히 예술 의자의 대량 생산에 앞장섰던 찰스&레이 임스의 작품들은 매력적이다. 잘 찾아보면 50만원 안팎으로 이 부부 디자이너의 명작에 앉을 수 있다. 선물용으로는 인스타(www.instashop.co.kr)에서 판매하고 있는 실물 의자를 정확히 12분의 1 사이즈로 줄인 미니어처도 권할 만하다. 의자 디자인 역사상 의미 있는 작품만 모아놓은 이 미니어처 시리즈는 받는 이로 하여금 컬렉션의 재미까지 함께 주는 센스 있는 선물이 될 수 있다. 가격은 7만5000원.

◆한국적 스타일의 이불

모던한 외모를 자랑하는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씨가 운영하는 서울 장충동 '이불'은 멋진 베개와 이불들을 구비하고 있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꼭 해드리고 싶은 선물 1순위다. 명주와 모시,베의 천연소재에 아름다운 천연 염색이 은은히 덧칠해진 이 이불을 덥고 주무시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입이 귀에 걸린다. 이불 가격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대로 천차만별이며,베개는 8만~10만원 정도다.

◆에스프레소 머신

스타벅스가 가장 큰 폭으로 성장가도를 달리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이제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끌 만한 정도가 됐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친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신혼 부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다. 30만원대의 실속형 브랜드로는 드롱기(Delonghi)를 들 수 있다. 일리나 크룹스 등에서 나오는 제품은 성능도 성능이지만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100만원을 호가하는 일리 제품의 가격이 부담될 수도 있지만 사실 '별다방(스타벅스)' 이나 '콩다방(커피빈)'에 하루 한번씩 석달간 갈 돈이면 최고의 커피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브랜드에서 제일 싼 아이템

'에르메스'나 '뱅앤올룹슨' 같은 고가 명품들 중에서도 접근 가능한 선물 목록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키친'을 본 사람이라면 첫 장면에 등장하는 그릇을 기억할 것이다. 에르메스 제품이다. 다른 도자기 명가에 비해 모던한 디자인이 매력이다. 가격은 20만~30만원대로,에르메스의 대명사로 통하는 스카프(50만원대)보다 훨씬 저렴하다. 덴마크산 명품 가전 뱅앤올룹슨의 거의 모든 제품이 수백만원대이지만 이어폰인 'A8'만큼은 20만원대에 살 수 있다. A8은 음질이 그다지 좋지 못한 아이팟에서 들려오는 노래도 순식간에 콘서트장에서 듣는 것처럼 황홀하게 만들어 버리는 명기로,깜찍한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쌍둥이칼로 유명한 '헹켈'의 손톱정리 세트는 언제나 받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가격은 20만~30만원대.또 청담동의 '10 코르소 코모'처럼 고급 편집매장에서도 은근히 합리적인 가격대의 선물 후보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딥틱'(Diptyque)이나 '밀러 해리스'(Miller Harris)처럼 국내에서 보기 드문 향초나 향수는 선물하는 이의 센스를 돋보이게 만들어줄 보배들이다.

◆역시 최고의 선물은 '꽃'

꽃만큼 선물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은 것이 또 있을까. 꽃선물을 할 때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꽃집에서 뿌리는 책받침 전단지를 보고 고르는 장미꽃 100송이 시리즈.단언컨대 어떤 여자도 어설픈 바구니에 담긴 100송이 장미를 받고 함박웃음을 짓지 않는다. 반면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제인 파커(Jane Packer)'나 현대백화점의 '소호&노호',신사동 가로수길의 '블룸앤구떼',한남동 UN빌리지 맞은 편 '초콜렛 플라워' 같은 곳의 독특한 꽃다발을 선물해 보라.꽃이야말로 좋은 선물의 출발점이자 완결판이라는 걸 실감하게 될 테니까. 국내 플라워 디자이너의 경우 5만~10만원 정도면 한다발을 꾸밀 수 있다.

/패션 칼럼니스트 · 월간 '데이즈드&컨퓨즈드' 수석 패션에디터 kimhyeont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