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11층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지난 30일 밤 10시.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언론 브리핑을 시작하자마자 "노 전 대통령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밤 11시에 대질시킬 계획"이라고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대질신문 계획이 있더라도 언론에 사전 공표하지 않는 관례에 비추어 볼 때 의외였다. 실제 검찰은 앞서 이날 오후 6시 브리핑에서 "대질을 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질 가능성을 현재로선 말할 수 없다. 조사사항을 보고 결정하겠다"며 조심스러워했다.

홍 기획관의 느닷없는 발표에 기자들은 부랴부랴 '노무현-박연차 밤 11시 대질'이란 기사를 급히 송고했다. 방송들은 이 소식을 긴급뉴스로 보도했고,신문들은 인터넷 홈페이지의 머리기사로 올렸다. 일부 신문은 지면에 반영하기도 했다. 검찰의 발표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 11시20분께 검찰은 갑자기 "대질이 무산됐다"고 기자실에 알려왔다. 노 전 대통령이 거부했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언론들은 서둘러 '노무현-박연차 대질'에서 '대질 무산'으로 기사를 고쳤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신문은 돌아가는 윤전기를 세우고 신문을 다시 찍기도 했다. 민감한 순간에 검찰의 성급함이 빚어낸 한밤중의 해프닝이었다.

이를 놓고 1일 법조계 안팎에선 뒷말이 무성했다. 검찰이 성사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는 '희망사항'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미리 발표한 배경에 대한 것이었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대질 계획을 언론에 발표한 것인지,아니면 너무 친절하게 브리핑을 하다 보니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검찰의 '언론플레이'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언론에 미리 대질계획을 흘리면 노 전 대통령이 '울며 겨자 먹기'로 대질에 응할 것으로 계산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검찰이 대질에 '큰' 희망을 걸고 있었다는 추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실제 검찰은 "대질에서 박 회장이 져본 적이 한번도 없다"며 대질이 검찰의 강력한 무기임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이 한 차례 대질을 거절한 이후 다시 대질을 권유하고,또다시 거부당하자 '깜짝 만남'까지 주선한 터여서 이런 추측이 더욱 그럴듯하게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대질이 없어도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충분한 정황 증거와 진술을 확보하고 있다"며 언론플레이설을 부인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