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식, 이환, 윤승훈 등 3인방 인터뷰

독립 극영화로는 처음 관객 수 10만명을 돌파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에는 상훈(양익준)과 연희(김꽃비), 두 주인공 못지않게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조연들이 있다.

상훈의 유일한 친구이자 정 많은 용역업체 사장 만식, 만날 욕을 먹어도 시원하고 싹싹한 웃음을 버리지 않는 후배 환규, 누나 연희의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상훈을 따라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영재는 상훈의 삶을 이끌고 거들며 바꿔놓는 중요한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을 각각 연기한 배우 정만식, 이환, 윤승훈은 안정적이고 힘 있는 연기로 작은 독립영화 '똥파리'를 큼직하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최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세 배우는 배역과 이미지가 줬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친절한 옆집 오빠일 것 같았던 정만식은 카리스마 넘치는 맏형이었고, 윤승훈은 존재만으로도 주변을 유쾌한 공기로 물들이는 환규와 다르게 진지하고 무거웠다.

또 이환은 반항기 가득한 눈빛으로 상대를 쏘아보는 영재와 달리 연기에 관한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는 데 신중했다.

어색함은 아주 잠시였고, 마주앉은 이들은 곧바로 '똥파리'의 힘을 빌려 무뚝뚝한 듯 정겨운 대화를 2시간 동안 펼쳐놓았다.



"감독님은 자기 이야기를 한 거라지만, 이렇게 영화로 나왔으니 우리가 나누고 펼쳐놓아야죠. '당신들의 가족은 잘 지내고 있는가'를 얘기하는 겁니다.해외 관객도 그런 핏빛 가족의 모습에 공감했을 거예요."(정만식)

"어떤 가족이나 크기와 모양이 똑같을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가족이 있으니 느끼는 부분이 있을 테죠."(이환)

만식과 환규는 각본 단계부터 정만식과 윤승훈을 염두에 두고 쓰인 인물이다.

윤승훈은 '품행제로'에서 양 감독과 공연한 인연으로, 정만식은 액터스스쿨에서 양 감독과 함께 수업을 받았던 인연으로 '똥파리'까지 오게 됐다.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탄생한 캐릭터라고 해도 '똥파리'는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윤승훈은 입대 전 스무 살 시절의 이미지로 탄생한 환규의 옷을 다시 입는 것에 애를 먹었고, 한창 준비 중인 연극 공연 때문에 며칠 동안 출연분량을 몰아서 촬영해야 했던 정만식은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환규는 날라리 같고, 까불거리는 아이예요.그런데 저는 제대 후에 연극을 하면서 무거운 연기 스타일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다시 가벼워져야 하고, 겉으로 보여야한다는 게 부담이었어요."(윤승훈)

"몰아서 촬영을 해야 했으니 만식에게 더 흡수되기를, 더 정만식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랐는데 감독님도, 나도 만족도가 50%밖에 안 돼요.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 평소 형 모습이랑 똑같네'라고 얘기하지만 저는 아쉽죠."(정만식)

정만식, 윤승훈과 달리 이환은 양 감독을 '똥파리'로 처음 만났다.

사무실에서 우연히 읽은 시나리오가 욕심 나 출연을 자청했다.

양 감독은 염두에 뒀던 다른 배우가 있었지만, 자꾸 이환의 얼굴이 아른거려 결국 그를 캐스팅했다.

누나 역의 김꽃비와 눈매가 비슷하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다.

영재는 주인공 상훈을 제외하면 가장 입체적이고 큰 내면의 갈등을 맞이하는 캐릭터다.

"영재가 표정이 없는 아이였으면, 존재가 기억조차 안 나는 그런 아이였으면 했어요.사실은 내면이 약하기 때문에 더 큰 힘을 가지려 하는데 폭력의 무서움을 알게 되면서 혼란을 겪죠. 감독님과의 대화가 도움이 됐어요."(이환)

현장 밖에서는 틈만 나면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양 감독은 현장에만 가면 조용해졌다.

배우들이 미리 연기를 맞춰보는 리딩이나 리허설도 없었고 다짜고짜 "(촬영)들어가자!"라는 말만 외쳤다.

자연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기대하고 모든 것을 배우에게 맡긴 연기자 출신 감독다운 선택이었다.

배우들은 "뭘 물어봐도 양 감독이 도망가더라"고 입을 모으면서 양 감독을 향한 애정어린 '지탄'을 시작했다.

"제가 시나리오를 하도 들고 다니니까 감독님이 현장에서 '얘 대본 못 보게 하라'고 스태프를 시켜서 시나리오를 빼앗더군요." (이환)

"어떻게 연기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불안하기도 했어요.그래도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가식적인 모습은 줄어들었죠." (윤승훈)

"배우들이 그림을 따라갈까 봐 얘기를 안 하는 거죠. 자꾸 얘기를 하게 되면 연기에 설정을 하거든요. 연기술을 부린다거나, 의도적으로 움직인다거나… 느끼는 대로만, 들리는 대로만 하기를 원한 것 같았어요. (정만식)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뭉친 현장은 더할 나위 없이 화기애애했지만, 문제는 제작비였다.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전세방까지 빼야 했던 양 감독 못지않게 배우들은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그대로 엎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렵게 완성된 '똥파리'가 드디어 공개됐던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배우들은 양 감독이 보물단지 아끼듯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영화를 그 자리에서 처음 보고 '고진감래'라는 말을 뼈저리게 깨달으며 울컥했다.

"형 그때 옆에서 우는 거 봤어요."(윤승훈)

"야, 나 아니거든. 울기는 네가 울었지."(이환)

대화는 결국 10만명 돌파를 앞둔 '똥파리'에 대한 예찬으로 흘러갔다.

관객이 이렇게 많이 드는 것이 장하고 신기하며 기분 좋으면서도 "이렇게 잘될 줄 알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결론은 "이것이 '똥파리'의 힘"이라는 것이다.

"제가 출연한 영화이지만, 영화가 치밀해요.양 감독이 규모와 속도감을 다 고민하고 계산해서 만들었더군요.이래서 우리가 놓지 못하고 따라온 게 아닌가 싶어요.이만큼 온 건 '똥파리' 자체의 힘이 있기 때문이겠죠." (정만식)

"우리가 해서가 아니라 영화가 정말 잘 만들어졌어요.새로운 이야기죠. 충무로에서만 환영하는 영화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보고 다양성의 힘을 느꼈으면 좋겠어요.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매개체가 됐으면 해요."(윤승훈)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