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행인을 집으로 유인해 침대에 눕히고 몸뚱이가 침대보다 더 크면 잘라내 죽이고 더 작으면 억지로 늘여서 죽였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자기의 일방적 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을 재단하려는 독선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경제성장의 부산물인 빈부갈등을 등에 업고 기업가에 대한 견제세력이 집결해 기업주들을 들볶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의 삼성 대주주간 증자사건이 13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법정에 계류돼 있다. 실제 가치보다 싸게 대주주 자녀에게 전환사채를 발행했다는 배임사건을 대법원이 이달 말 선고한다고 예고했다. 삼성은 초우량 제품개발로 일본 소니를 추월하는 쾌거를 이뤘는데 그 결과 높아진 주식가치가 화근이 돼 세법상 시효도 지난 사건에 대해 형사소추를 받고 있다. 주식가치는 수시로 변하는데 10여년이나 지난 후에 당시 거래가격의 적정성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 주가가 폭락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사건이다. 당사자인 주주 사이에 합의한 주주재산 관련 자본거래는 회계 구조상 경영진의 배임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재산을 더 출자하든지 덜 출자하든지 기업 재산은 모두 주주에게 귀속되는 것이어서 주주가 아닌 사람이 배임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이다. 삼성그룹 몰아치기는 독주적 성과에 대한 견제로 평균의 침대보다 더 성장한 살을 잘라내는 형국이다.

가장 부지런한 기업가로 알려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자수성가로 대우그룹을 일으켜 세계경영의 기치를 들고 국제무대를 뛰어다녔다. 동유럽을 중심으로 자동차, 중공업뿐만 아니라 전자,섬유분야까지 진출했는데 외환위기가 유발한 살인적 고금리를 견디지 못해 파산했다. 피땀으로 세운 사업이 폐기물로 전락했고 거대한 손실 책임을 뒤집어쓰고 해외유랑과 감옥살이로 백발노인이 됐다. 금융회사를 속여 대출 받았다는 사기혐의가 인정돼 18조원이란 천문학적 추징금도 부과됐다. 부도가 나면 기업재산은 취득가액과 무관하게 헐값으로 처분되는데 그 손실만큼 금융회사는 사기를 당한 것이고 모든 책임을 김 전 회장에게 물어야 한다면 이는 대우그룹 부도 전 재산규모에 맞춘 침대에 눕혀 놓고 몸을 잡아당기는 형국인 것이다.

기업의 사회환원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가로는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를 꼽을 수 있다. 청년 시절 창업한 평생 사업을 상속하지 않고 장학 및 복지사업에 기부했다. 설립자 유지에 따른 유한양행의 기업이념은 우수의약품 생산,성실납세,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다. 교과서적 기업이념으로 83년의 역사를 이어온 유한양행은 국내 기업순위가 400등이 넘지만 초우량 제약회사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해 많은 중소기업과 연계해 대규모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 삼성과 그 이름만 들어도 뿌듯한 유한양행 모두 우리의 소중한 재산이다. 기업주의 경륜과 유지가 수용되고 활용되는 사회에서 더 많은 우량기업이 등장해 일자리와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가뿐만 아니라 실패한 기업가의 경험도 소중한 재산이다. 김우중 전 회장은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 경제의 활로는 개발도상국에 전진기지를 세우는 세계경영이라는 신념으로 대규모 해외투자를 추진하다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외환위기 초기에 고금리에 대처해 우량 계열사를 우선 매각해 빚을 갚아야 했을 것을 당시 김대중 정부의 유도에 따라 쌍용차를 인수하는 등 역주행으로 시기를 놓쳐 그룹 전체가 쓰러졌다.

김 전 회장은 해외의 오랜 인맥과 경험을 기반으로 사업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백발을 휘날리며 고기잡이 그물을 챙기는 산티아고 노인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이웃들이 모두 비웃는 가운데서도 미끼로 쓸 정어리를 챙겨주며 배웅하는 소년과 같은 따뜻한 격려가 아쉬운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