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공항에서 북동쪽으로 3㎞ 정도 택시를 타고 가면 로만빌이라는 지명의 한적한 교외에 다다른다. 프랑스가 육성 중인 7개의 바이오클러스터 가운데 하나인 비오시테크가 자리잡은 곳이다. 2003년 조성된 비오시테크는 연면적 8만㎡,건평 2만6000㎡ 규모에 연구원 등 인력 550명에 불과한 소규모 클러스터이지만 자신감만큼은 남다르다. 세계 최첨단을 자랑하는 23개 강소(强小) 바이오벤처기업이 이곳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관리회사인 비오시테크의 자크 롬멜 회장은 "이곳의 강점은 아이디어와 가능성에 있다"면서 "모두가 미국의 암젠과 같은 바이오 대박 신화를 꿈꾸며 저마다의 기술을 가다듬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바이오벤처 1세대인 암젠은 항체 항암제를 특화해 지난 20년간 100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회사로 유명하다. 비오시테크 관리회사는 입주사들이 핵심 역량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생산공장,시험설비,사무실,식당 등의 서비스를 완벽하게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롬멜 회장의 설명이다.

프랑스 바이오 신약 업계에선 "비오시테크에서 향후 10년 내 노벨상 수상자와 연간 매출 수조원대의 글로벌 스타 바이오벤처가 탄생할 것"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 정부와 지자체 관계자들의 단골 탐방코스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비오시테크는 지난해 바이오 신약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뒤 관련 특허 138개를 출원했다. 전년 대비 13%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중 프랑스 평균(1.6%)보다 훨씬 높다. 이 같은 기술력은 설립 이후 최대인 1억유로(1700억원)에 달하는 펀드자금을 지난해 유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로써 지난 5년간 비오시테크 입주사들이 끌어들인 자금은 3억4100만유로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5000억원이 넘는다.

세계 3대 제약사인 사노피아벤티스를 탄생시킨 프랑스 정부가 이들을 두고 '미래의 전사들'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바이오벤처 노벨셀이 대표적이다. 노벨셀은 상용화할 경우 블록버스터급이 될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차세대 항생제를 발굴,현재 임상 3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관리직을 포함,직원 40여명의 소형 벤처회사임에도 지난해 민간펀드에서 7500만달러의 연구자금을 끌어들였다. 관절염과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갈라파고스 역시 가능성을 인정받는 유망 기업 중 하나다.

비오시테크의 명성은 이 같은 개별적 능력으로만 형성된 것이 아니다. 롬멜 회장은 이를 매트릭스처럼 짜여진 개방형 협력으로 요약했다. 사실 비오시테크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일종의 사설 클러스터다. 사노피아벤티스가 땅은 물론 사무실 공장,기타 지원시설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 돈으로 48조원, 연간 매출 372억달러에 달하는 사노피아벤티스가 소형 클러스터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무엇보다 '개방형 협력'을 통한 신약 개발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전공학기업인 셀렉티스의 데이비드 소우루디브 부회장은 "우리가 일하는 바이오테크 분야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협력이 필요하다"며 "비오시테크 내 업체는 물론 유럽 미국 일본의 50여개 업체들과 연구협약을 체결해 연구활동에 주력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프랑스가 보유한 바이오인포매틱스 공동기술이나 사노피아벤티스의 데이터베이스(DB) 등을 활용하고 자문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사노피로선 이들이 쏟아내는 연구성과나 임상성과를 분석해 자사의 지식재산 포트폴리오에 집어넣거나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으로 사들일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회사는 이런 가능성에 주목하고,2012년까지 이곳에 1억20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규모를 현재의 2배로 키울 계획이다.

비오시테크 클러스터는 프랑스 정부 차원에서 설립한 메디센이라는 상위 연구 네트워크와 연결돼 있다. 이 기구는 프랑스 정부가 '경쟁력의 축'이라는 차세대 육성산업 전략의 일환으로 2005년부터 연간 1억4000만달러를 투자,자국 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공동연구와 신약개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예컨대 알츠하이머병의 원리를 밝히는 뇌이미징 등 주로 각 제약사들의 공통 관심사를 발굴,연구 지원함으로써 불필요한 투자로 인한 재정적 리스크를 줄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프랑스 제약사들이 경쟁국가보다 빨리 드러그 디자인(의약품 개발기획)에 이르고,상업화에도 성공토록 하자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비오시테크는 더 나아가 범 유럽 국가연합 신약개발 지원시스템인 IMI(Innovative Medicine Initiative) 프로그램에도 연결된다. 개개의 바이오벤처회사에서부터 유럽 차원의 IMI에 이르기까지 촘촘히 짜여진 매트릭스 협력시스템이 비오시테크는 물론 사노피아벤티스,프랑스 제약산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이곳을 방문한 한 국내 지자체 관계자는 "기업과 기업 간 협업은 물론 기업과 정부,정부와 정부 간 공동이익을 위해 일사불란하고 치밀하게 움직이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는 데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파리=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