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산·학·연 따로따로"
20년 이상 제약회사 신약개발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국내 T사의 K부사장은 국내 신약개발 연구풍토의 가장 큰 문제를 '지독한 개인주의'로 꼽으며 이렇게 혹평한다. 협업은커녕 학계와 업계,협회 모두 이해관계가 다른 탓에 치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기초 연구성과를 산업화로 연결시킬 추동력이 없다는 얘기다. 실제 산업연구원 논문에 따르면 국내 대학이 수행하고 있는 정부 정책과제 중 연구비 기준으로 80%,과제수 기준으로 91%가 민간기업의 참여 없이 독자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전체 연구 주제의 42%를 외부인력을 활용하는 미국국립보건원(NIH)이나,신약개발 과제의 80~90%를 국내외 연구주체들과 협업 혹은 인수합병(M&A)으로 해결하는 선진 제약사들과는 대조적인 현실이다.
한 바이오벤처 업체 사장은 "독자적으로 특허를 출원하고 이를 통해 민간 투자를 일으킨 뒤 주식시장에 상장해 거액을 쥐겠다는 생각이 대다수"라며 "학계와 기업체는 기술을 자문하거나 거래하는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질적 발전을 꾀해야 하는 공동연구는 연구비 조달이나 이익분배, 특허권과 관련한 분쟁,학맥 및 자존심 등을 이유로 꺼린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네트워킹이 이뤄진다해도 상호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주요 제약사의 한 신약 후보물질 발굴 담당 임원은 "먹을 게 있어야 협력하는 게 인지상정인데,대학과 협력해 남는 게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그냥 형식적으로 이름을 걸어놓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특히 과제를 함께 진전시킬 만한 전문인력도 없고,과제수행 결과 상업화로 연결할 만한 수준의 '똑 부러진' 테마가 없다 보니 협업의 필요성 자체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풀지 못하는 또 다른 원인은 각종 이해관계 집단끼리 반목,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조건부 연구 재개가 허용된 줄기세포의 경우 이른바 황우석 박사 방식의 연구를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대립하고 있다. 신약개발의 필수과정인 임상 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의학계와 기획 및 생산을 주로 담당하는 약학계가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는 것도 문제 중 하나다.
한 국내 제약업계 원로는 "제각각 모래알처럼 흩어져 방향성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은 예산을 퍼붓는다 해도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이대로 5년간 허송세월할 경우 우리나라 바이오 신약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