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상황이 악화되고 주가가 곤두박질쳤지만 벅셔해서웨이 주주들의 오마하 '성지 순례'는 계속됐다.

환호는 가라앉고 열기는 식었지만 현인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한 욕구는 꺾이지 않았다. 2일(현지시간) 오마하시 퀘스트센터에서 열린 벅셔해서웨이 주총에는 작년보다 3000명 이상 많은 3만5000명이 참석했다. 10대 초등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주주층도 다양했다.

주총에 앞서 시작된 투자자 질의 응답에서 버핏 회장은 지난해 어려웠던 투자환경을 토로했다. 이자는 고사하고 손실을 감수하면서 재무부 증권에 투자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는 것이다. 벅셔는 작년 10월19일 원금이 500만달러인 미 재무부 증권을 팔았다. 올 4월29일 만기가 돌아오는 증권으로 판매 가격은 500만90달러70센트였다. 만기에 500만달러를 돌려받을 증권을 누군가 투자손실(negative yields)을 감수하면서 산 것이다. 그는 "앞으로 다시는 그런 현상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차라리 매트리스에 돈을 묻어둔 게 유리했을 정도였다고 강조했다.

찰리 멍거 부회장과 함께 5시간 동안 계속된 답변에서 워런 버핏은 예전처럼 자신의 투자 철학이나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벅셔의 부진했던 투자 성과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 힘썼다. 파생상품 투자 손실에 대해선 속시원한 답을 하지 못했지만 일부 실수를 인정하며 추가 손실 가능성을 밝히기도 했다. 주주들은 파생상품을 '대량살상무기'에 비유해 온 버핏이 파생상품 투자를 막지 못한 데 대해 상당히 실망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버핏 회장은 포트폴리오 투자와 신금융기법이 확산된 데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요즘 대학에서도 복잡한 산술을 동원한 금융기법을 가르쳐야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1분기 중 벅셔의 주당 자산가치가 6% 하락하고 주가가 최근 1년 새 30% 이상 폭락한 데 대해선 "벅셔는 여전히 수익창출력을 갖고 있다"며 "저평가된 주가는 조만간 정상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투자자들을 달랬다.
벅셔가 투자한 은행주에 대한 질문에서 버핏 회장은 "웰스파고 US뱅코프 골드만삭스 등은 자본구조가 탄탄하고 수익 창출력이 뛰어나다"며 "웰스파고 지분을 더 사고 싶다"고 말했다.

주총 시작 전에 상영된 50분 남짓의 홍보영화에서 버핏 회장은 계열사인 네브래스카퍼니처마트의 매트리스 세일즈맨으로 깜짝 변신해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벅셔가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빼앗겨 회장직에서 쫓겨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사진이 다른 일을 해보라고 권유했다는 것이다. 그는 벅셔의 작년 실적이 좋지 않았지만 자신도 잘못한 게 많아 경영진을 내쫓지 못했다고 말하는 등 특유의 솔직함과 익살로 장내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오마하(네브래스카주)=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