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감독이 이끄는 전주 KCC가 '2008~2009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에서 서울 삼성과의 격전 끝에 4승3패로 우승했다. 허 감독은 이로써 한국 프로농구 사상 처음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한 인물이 됐다. '스타 플레이어는 스타 감독이 될 수 없다'던 속설도 깨뜨렸다.

허 감독의 우승에 주목하는 건 그가 농구 천재 내지 농구 대통령으로 불린 대스타였으나 모범생은 아니었던 까닭이다. 천부적인 실력에 무서운 연습,부상을 아랑곳하지 않는 투혼과 열정의 소유자였지만 그만큼 항의 및 감독과의 불화설도 잦았다.

음주운전으로 하도 여러차례 걸려 지금도 음주운전 얘기만 나오면 머쓱해 한다는 말도 있다. 2005년 5월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성적도 들쭉날쭉했다. 데뷔 첫해인 2005~2006 시즌엔 정규리그 5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이듬해엔 정규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독선적이다''선수와 감독의 역량은 다르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다. 그러나 그는 선수 시절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최고의 자리를 내주지 않은 승부사답게 변하기 시작했다. 감독 혼자만의 의욕과 다그침만으로 팀을 운영할 순 없다는 걸 안 듯 대놓고 열 받는 일이 줄었다.

어떻게든 절제하려는 듯 경기 내내 재킷 단추도 풀지 않는다. 명령 대신 격려를 통해 선수들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전략적 대응을 통한 위기관리 능력을 키우는가 하면 용병술 또한 과감해졌다. 혼자 잘났던 스타 플레이어에서 조직의 리더로 변신,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문성과 헌신이라고 한다. 뛰어난 판단력과 작전력은 전문성의 영역에 속할 테고,선수 개개인의 장 · 단점을 파악해 최고의 실력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스타와 다른 선수들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미묘한 갈등을 줄임으로써 화합을 도모하는 건 헌신의 영역에 해당될 것이다.

허재 감독의 세상이 얼마나 계속될 지는 미지수다. 실업농구 시대와 달리 지금은 팀 간 격차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사고뭉치 말썽꾸러기였다던 그가 스타도 키우고 다른 선수도 끌어안는 포용력 있는 지도자로 거듭나는 모습은 보기 좋다. "조금 모자란 감독을 끝까지 믿고 따라준 선수들 덕에 우승할 수 있었다"는 말도 괜찮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