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중략)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옛날의 그 집> 중)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1주기(5일)를 맞아 곳곳에서 추모 열기가 뜨겁다.

고인의 대표작이자 우리 문학의 역작인 《토지》에 대한 독자들의 사랑은 여전하다. 1971년 고인이 유방암 수술을 받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집필한 '투혼'이 오롯이 담긴 《토지》는 사후 1년 동안 20만부가 판매됐다.

1주기를 맞아 토지문화재단이 펴낸 추모집 《봄날은 연두에 물들어》도 발간됐다. 최일남 토지문화재단 상임이사는 간행사에서 "문학에 말뚝을 박고 늑대도 있고 하이에나도 있는 삶을 견디며 박토를 갈아 온갖 인간이 살고 죽는 《토지》를 일구고,그 밖에 숱한 작품을 거두어 들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책에는 고인의 삶과 문학,문인들의 추모글 등이 실려 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평론집 《박경리와 토지》(강)를 내고 "《토지》의 참주제는 삶의 영원한 터전인 '산천'(자연)이며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뻐꾸기 소리와 능소화가 주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고 분석했다.

고인의 고향이자 장지가 있는 경상남도 통영에서는 1주기 추모제가 개최된다. 5일 오전에는 고인이 안장된 통영시 산양읍 박경리공원에서 추모식이 열린다. 4일부터 차려진 시민분향소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