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신약 강국 가는 길] 신약 후보물질 찾으려 대학생 논문까지 검색 '글로벌 헌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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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생존' 위해 '혁신' 나선 글로벌 제약사들
화이자 GSK 노바티스 MSD.모두 세계 톱 10위 내의 글로벌 제약사들이다. 이들을 합치면 연간 총매출이 1000억달러를 넘는다. 이익률도 평균 매출의 20% 안팎에 달한다. 이 같은 초우량 기업들의 현안이 다름아닌 '생존'이다. 세계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 부진,특허 만료에 따른 제네릭(복제약품)의 약진,블록버스터(연매출 판매액 10억달러 이상)급 신약의 출시 격감 등이 이들이 겪는 최대 고민거리다.
세계 보건산업 연구기관인 IMS헬스가 최근 발표한 '2008년 세계 처방약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문의약품(처방약) 시장은 총 7730억달러 규모로 전년 대비 4.8% 커졌다. 하지만 이는 2001년(11.8%),2003년(10.2%) 등 2000년대 초반보다 크게 낮아진 수치다. 반면 향후 10년간 특허가 만료되는 의약품 시장 규모는 모두 900억달러가량으로 추산된다. 특허 보호가 종료되는 의약품은 복제약의 등장과 함께 20%에서 80%까지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다보니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혁신(Innovation)'이 없으면 '멸종(Extinction)'된다는 말이 통용될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감은 '바이오신약' 개발 능력 강화와 이를 상용화하는 공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줄이려는 혁신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초 미국 뉴욕 본사에서 만난 화이자 관계자는 "연매출 140억달러짜리 블록버스터인 리피토(고지혈증 치료제)의 특허 기간이 2011년 말에 끝난다"며 "매출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바이오신약 등 혁신적 신약 개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화학신약 시장이 당장 축소되지는 않겠지만 성장의 한계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며 "와이어스 와의 합병을 계기로 바이오기술을 활용한 항암제와 백신 개발에 더욱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바이러스 감염만을 예방하는 단순 예방용 백신보다는 당뇨병 예방과 같은 '테라퓨틱(일반 질병예방)'백신을 중점적으로 개발해 경쟁사보다 앞서 나간다는 전략이다.
GSK나 노바티스,MSD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허 만료된 의약품의 매출 감소분을 혁신 신약으로 채워야하는 상황에서 기댈 언덕은 결국 연구개발이다. 글로벌 5대 제약사들이 연간 지출하는 연구개발비는 302억달러(2007년 기준).개별 회사로 보면 매출의 16.7%(GSK)에서 많게는 21.1%(MSD)에 이른다. 이 중 바이오부문 연구비 지출 비중은 평균 10% 안팎에서 최근 들어 20%대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연구개발의 효율성 높이기도 활발해지고 있다. GSK는 '스마트스터디'란 이름으로 기존 10~15년 걸렸던 신약개발 기간을 최대 3분의 1로 단축시키고,개발 비용도 절반 이하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질병의 구체적 원인체를 검증하는 바이오마커(질병원인파악 물질) 등을 이용해 적은 숫자의 환자들을 짧은 시간에 테스트하고 있다. 5억~10억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임상시험의 효용을 높이기 위해 경제적 효과가 낮거나 가능성이 낮은 신약후보 물질을 일찌감치 골라내기 위해서다.
노바티스 역시 공식 임상시험에 돌입하기 전 미니 임상시험을 해보는 '프루프 오브 컨셉트(Proof-of-Concept)'라는 시뮬레이션형 개발전략과 이미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로 후보물질이 약효가 있는지를 빠르게 검증하는 고속약효 검색 시스템 등을 통해 지난 3년간 신약개발 기간을 평균 25% 단축시켰다. MSD도 시뮬레이션과 미니임상 등을 공식 임상시험 전에 활용해 당뇨치료제인 자누비아의 임상 기간을 7년에서 3.7년으로 단축했다.
업체들은 이 같은 R&D 혁신과 함께 블록버스터형 대형 신약보다는 연매출액이 1억~10억달러가량인 중소형 신약 개발로 연구 방향을 재조정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국적 거대 제약사들은 대부분 전담팀을 두고 소형 바이오벤처는 물론 제3국 대학생들의 졸업논문 하나까지 샅샅이 뒤지는 등 '글로벌 헌팅'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적과의 동침'도 불사할 정도로 과감한 실용주의 전략을 표방하고 있다. 화이자와 GSK가 지난달 에이즈(HIV) 치료제 전문회사를 공동 설립키로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다국적 제약회사 임상연구 담당자는 "그동안 신약연구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거대 제약사들이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 등에 전례없는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심지어 최근 바이오기술의 첨병격인 줄기세포 연구기법이 발달하면서 이전에는 효과가 없다고 버렸던 신약후보 물질을 다시 재검증하는 이른바 재활용 연구도 활기를 띠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 · 런던=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