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내조의 여왕은 단순 무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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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신데렐라 드라마 만들기는 그만, 얼빵해야 사랑받는다는 통념깨야
신데렐라 드라마 만들기는 그만, 얼빵해야 사랑받는다는 통념깨야
TV는 거울이다. 시사 · 오락 · 예능 · 개그 프로그램 할 것 없이 세태를 비추고 반영한다. 드라마도 다르지 않다. 허구라지만 세상의 단면과 사람들 마음 속 생각의 편린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시대 상황과 트렌드를 전하는 것도 물론이다. 불황 때는 가족을 위해 물불을 안가리는 억척맞은 아줌마와 평강공주가 뜨는 것도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불황으로 인한 취업난과 구조조정에 따른 불안 탓인지 드라마 '내조의 여왕'이 대박을 터뜨렸다. 제목 때문인지 각종 설문조사를 통한 신(新)내조 방법까지 등장했다. 전같으면 남편이 '집안일' 신경 안쓰게 살림 잘하고 아이들 잘 키우면 됐지만 지금은 남편 '스펙'을 높이는데도 한 몫 해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내용은 단순하다. 신데렐라가 되고 싶었던 여자가 왕자인 줄 알고 택한 남자가 학벌만 좋지 소심하고 주변머리 없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백수 신세다. 먹고 살고자 짝퉁명품을 만들어 팔던 여자는 안되겠다 결심,남편의 취업을 위해 옛애인의 아내가 된 학창 시절 라이벌에게까지 무릎을 꿇는다.
남편을 생존과 승진을 위해 뛰기는 다른 아내들도 마찬가지.임원 부인의 시중을 들다 못해 친정집 이사까지 도우러 간다. 공군 부인이 된 친구의 일상에서 힌트를 얻어 썼다는 게 작가의 얘기이고 보면 군인사회에선 여전히 남편의 계급이 아내의 계급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인기 절정인 주인공의 캐릭터를 요약하면 이렇다.
예쁘다,돈 없이도 멋낼 줄 아는 세련된 감각을 지녔다,음식과 바느질 모두 잘한다. 남편의 사랑이 자신의 자존심이라고 믿고 남편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가린다,그렇지만 마그네틱을 마그네슘,군계일학을 군대일학이라고 할 만큼 무식하고 공짜라면 사족을 못쓴다. 외모와 솜씨는 나무랄 데 없지만 단순 무식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게 매력이란다. 잠시 한눈을 팔았을지언정 아내밖에 모르는 남편이 있는데 옛애인이 이것저것 걱정해주고 우연히 만난 남편회사 사장 또한 주변을 맴돌며 장을 봐주고 차를 고쳐주고 노래를 불러준다. 아니 이럴 수가. 돈은 못벌어도 자신밖에 모르는 줄 알던 남편이 배신하는 순간 훨씬 더 근사한 남자가 나타나다니.
세월 따라 드라마도 변했다. 여주인공의 캐릭터 역시 달라졌다. 부모를 잃어도,남자에게 차여도,이혼을 당해도 울면서 주저앉지 않는다. 온순하고 부드럽기만 하던 데서 벗어나 누구에게든 당차고 야무지게 대든다. 내용 역시 온갖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는 걸로 끝나던 데서 결혼 뒤에 겪는 각종 생활을 그리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모든 게 변했는데도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콩쥐 팥쥐 식 대결 구조 끝에 신데렐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게다가 콩쥐 팥쥐의 캐릭터 설정 또한 놀랍도록 흡사하다. 팥쥐는 노력형,콩쥐는 이른바 막무가내형인 게 그것이다. 노력형은 악착스러워 징그럽고,막무가내형은 단순 얼빵해 편하고 사랑스럽다는 식이다.
매스미디어 특히 TV는 여론 감시와 함께 여론 형성 기능도 갖는다. 아침방송에서 토마토가 입냄새 제거에 좋다고 하면 그날 오후 슈퍼마켓 토마토가 동나는 게 그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환상을 통해서라도 위안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드라마속 여성상은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안그래도 이 땅 여성들은 이중적 잣대로 인해 힘겹다. 가장 좋은 내조로 맞벌이를 선택하고도 '연인의 상사 저녁 접대'에 대해선 72.4%의 남성이 '반대한다'와 '절대 안된다'라고 한다는 게 현실이다. '결혼 상대가 직장에서 받았으며 하는 근무 평점' 또한 여자는 A A+ 순,남자는 A B 순으로 답했다(A+는 최하위)는 마당이다.
돈 벌어오는 건 좋은데 너무 열심히 일하는 건 떨떠름하다는 말이다. 직장에서도 여자의 적극성은 극성으로 폄하되는 수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한다. 맞벌이 아내의 경우 안팎에서 시달리지만 30 · 40대 부부의 경우 '가장 중시하는 내조와 외조의 조건' 첫째로 '일에 대한 적극적 지지와 뒷바라지'를 꼽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여성의 대학 진학율이 80%를 넘는 마당에 여성은 그저 단순 무식해야,얼빵해야,망가져야 사랑받는다는 식의 정체성을 확대재생산하는 드라마는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진실은 불편하지만 신기루가 사라진 현실은 더 큰 불만과 배신감만 남기기 쉽다. 망가짐으로써 사랑받는 여성상이 아닌 제몫을 제대로 해냄으로써 존중받는 여성상을 정립할 때도 됐다.
아니나 다를까. 불황으로 인한 취업난과 구조조정에 따른 불안 탓인지 드라마 '내조의 여왕'이 대박을 터뜨렸다. 제목 때문인지 각종 설문조사를 통한 신(新)내조 방법까지 등장했다. 전같으면 남편이 '집안일' 신경 안쓰게 살림 잘하고 아이들 잘 키우면 됐지만 지금은 남편 '스펙'을 높이는데도 한 몫 해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내용은 단순하다. 신데렐라가 되고 싶었던 여자가 왕자인 줄 알고 택한 남자가 학벌만 좋지 소심하고 주변머리 없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백수 신세다. 먹고 살고자 짝퉁명품을 만들어 팔던 여자는 안되겠다 결심,남편의 취업을 위해 옛애인의 아내가 된 학창 시절 라이벌에게까지 무릎을 꿇는다.
남편을 생존과 승진을 위해 뛰기는 다른 아내들도 마찬가지.임원 부인의 시중을 들다 못해 친정집 이사까지 도우러 간다. 공군 부인이 된 친구의 일상에서 힌트를 얻어 썼다는 게 작가의 얘기이고 보면 군인사회에선 여전히 남편의 계급이 아내의 계급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인기 절정인 주인공의 캐릭터를 요약하면 이렇다.
예쁘다,돈 없이도 멋낼 줄 아는 세련된 감각을 지녔다,음식과 바느질 모두 잘한다. 남편의 사랑이 자신의 자존심이라고 믿고 남편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가린다,그렇지만 마그네틱을 마그네슘,군계일학을 군대일학이라고 할 만큼 무식하고 공짜라면 사족을 못쓴다. 외모와 솜씨는 나무랄 데 없지만 단순 무식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게 매력이란다. 잠시 한눈을 팔았을지언정 아내밖에 모르는 남편이 있는데 옛애인이 이것저것 걱정해주고 우연히 만난 남편회사 사장 또한 주변을 맴돌며 장을 봐주고 차를 고쳐주고 노래를 불러준다. 아니 이럴 수가. 돈은 못벌어도 자신밖에 모르는 줄 알던 남편이 배신하는 순간 훨씬 더 근사한 남자가 나타나다니.
세월 따라 드라마도 변했다. 여주인공의 캐릭터 역시 달라졌다. 부모를 잃어도,남자에게 차여도,이혼을 당해도 울면서 주저앉지 않는다. 온순하고 부드럽기만 하던 데서 벗어나 누구에게든 당차고 야무지게 대든다. 내용 역시 온갖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는 걸로 끝나던 데서 결혼 뒤에 겪는 각종 생활을 그리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모든 게 변했는데도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콩쥐 팥쥐 식 대결 구조 끝에 신데렐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게다가 콩쥐 팥쥐의 캐릭터 설정 또한 놀랍도록 흡사하다. 팥쥐는 노력형,콩쥐는 이른바 막무가내형인 게 그것이다. 노력형은 악착스러워 징그럽고,막무가내형은 단순 얼빵해 편하고 사랑스럽다는 식이다.
매스미디어 특히 TV는 여론 감시와 함께 여론 형성 기능도 갖는다. 아침방송에서 토마토가 입냄새 제거에 좋다고 하면 그날 오후 슈퍼마켓 토마토가 동나는 게 그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환상을 통해서라도 위안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드라마속 여성상은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안그래도 이 땅 여성들은 이중적 잣대로 인해 힘겹다. 가장 좋은 내조로 맞벌이를 선택하고도 '연인의 상사 저녁 접대'에 대해선 72.4%의 남성이 '반대한다'와 '절대 안된다'라고 한다는 게 현실이다. '결혼 상대가 직장에서 받았으며 하는 근무 평점' 또한 여자는 A A+ 순,남자는 A B 순으로 답했다(A+는 최하위)는 마당이다.
돈 벌어오는 건 좋은데 너무 열심히 일하는 건 떨떠름하다는 말이다. 직장에서도 여자의 적극성은 극성으로 폄하되는 수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한다. 맞벌이 아내의 경우 안팎에서 시달리지만 30 · 40대 부부의 경우 '가장 중시하는 내조와 외조의 조건' 첫째로 '일에 대한 적극적 지지와 뒷바라지'를 꼽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여성의 대학 진학율이 80%를 넘는 마당에 여성은 그저 단순 무식해야,얼빵해야,망가져야 사랑받는다는 식의 정체성을 확대재생산하는 드라마는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진실은 불편하지만 신기루가 사라진 현실은 더 큰 불만과 배신감만 남기기 쉽다. 망가짐으로써 사랑받는 여성상이 아닌 제몫을 제대로 해냄으로써 존중받는 여성상을 정립할 때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