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범 이야기만으로 《천일야화》 같은 책을 만들 수 있을 만큼 호랑이 설화가 풍부한 '호담국(虎談國)'이다. "(최남선)

호랑이 설화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퍼져 있다. 단군신화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등 전래동화에도 등장한다.

호랑이뿐만 아니라 웅녀 얘기와 백두산,아리랑,굿,노래 등 한국 문화의 '원형'은 무궁무진하다. 이들 모두가 스토리텔링의 보고다.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부터 한류열풍을 일으킨 드라마까지 소재와 장르도 다양하다.

지난해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선정한 문화원형만 무려 170가지에 달한다. 왜 우리는 이들 문화원형에 먼지만 쌓이도록 내버려 두는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화' 프로그램만 잘 활용해도 뛰어난 스토리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 핵심 분야는 '문화원형 창작소재 개발'과 '문화원형 글로벌콘텐츠화'. 문화원형 창작소재 개발 중에서는 '이야기형 소재'가 단연 돋보인다. 원효대사를 매개로 한 스토리뱅크 개발,경성의 유흥문화공간(카페 · 다방) 콘텐츠 개발,'노래 조선'을 향한 모던 보이 이철의 꿈-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을 소재로 한 창작 시나리오 등이 눈길을 끈다.

'문화원형 글로벌콘텐츠' 중 팬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유적수사대-왕릉의 비밀'은 신라 10대 문화재를 통해 베일에 싸인 진실을 파헤쳐 가는 드라마.잠자는 왕들의 무덤에서도 얼마든지 '판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상상필름의 영화 '사물 0년'(가칭)은 사물놀이 탄생의 주역인 이광수,최종실,김덕수,김용배씨의 이야기를 다룬다. 인스토리의 다큐멘터리 영화 '웅녀의 피라미드'는 최근 중국 동북부에서 발견된 동아시아 최고(最古) 문명 속의 한민족 문화원형을 모티브로 한다.

전통놀이 문화인 숨바꼭질을 온라인 게임에 적용하는 지피엠스튜디오의 '까꿍온라인'과 컬처메이커,국기원,계명대가 공동개발하는 '태권도 원형을 주제로 한 멀티미디어 학습 프로그램'도 주목할 만하다.

전통과 신화를 판타지로 재가공하려는 네티즌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인터넷 다음 카페에는 4000여개의 판타지 소설 동호회가 있다. 회원들은 직접 이야기를 쓰고 서로의 작품을 평가해 준다.

300만 회원을 보유한 넥슨의 온라인게임 '마비노기'는 고대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신세대의 판타스티시즘(Fantasticism)을 자극해 수많은 마니아 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을 이어주는 고리는 역시 '재미'와 '감동'이다.

김덕수의 사물놀이나 원효대사의 화해 캐릭터,태권소년 등 우리의 문화원형이 북유럽의 '트롤' 판타지를 뛰어넘을지 기대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