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여왕' 이은미(43)의 노래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추억여행' 같다. 따스한 질감으로 가슴을 건드리는 목소리가 느긋하고 여유롭다.

2005년 발표한 '애인 있어요'는 엠넷차트에서 5일 현재 역대 최장 기록인 67주 연속 랭크를 기록하고 있다. 톱가수의 히트곡들도 2~3개월 뒤에는 차트 밖으로 밀려나는 현실에 비춰 놀라운 사건이다.

음악인생 20년을 결산하는 최신곡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발표 5시간 만에 미니홈페이지 배경음악 판매 1위에 올랐다. 여세를 몰아 세계 70개 도시 투어에 나선 이은미를 서울 합정동에 있는 연습실에서 만났다.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점잖게 기다리면서 저를 3만% 믿어주는 팬들이 있으니까요. 과분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흥행과 상관없이 제가 좋아하는 곡들을 불러왔는데 이번에는 소 뒷걸음치다 닭잡은 격이라고나 할까요?"

늘 한 박자 늦게 인기를 얻었던 그의 곡이 단박에 미니홈피 배경음악 1위에 오른 데에는 고(故) 최진실씨의 후광이 컸다. 고인이 자살하기 전 개인 홈페이지 배경음악으로 '애인 있어요'를 선택한 게 알려지면서 이은미도 덩달아 유명세를 탔다.

"미니홈피 배경음악이 유행하는 것은 음악을 감상하던 시대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액세서리나 장난감쯤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시대란 거죠.10대와 20대들이 '엄마뻘'이나 '이모뻘'되는 제 음악을 소비하는 게 참 신기해요. 게다가 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30~40대와 70대 노인층까지 제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자기 이야기 같은 노래들을 질리지 않게 들려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자극적인 히트곡들은 단숨에 대중을 열광시키지만 곧 식게 만든다. 그러나 그는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소통을 시도한다.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살아야 한백년 될까'('타임 앤 라이프' 중),'사랑해서 후회없다던/ 사랑해서 보내준다던/ 잔인한 거짓말'('헤어지는 중입니다' 중),'우리가 만약에 결혼했다면/ 이럴 때 누구랑 술한잔 할까'('결혼 안하길 잘했지'중) 등 때로는 토로하고,때로는 속삭이며 접근한다.

"제 노래는 입소문으로만 전해지니까 전파 속도가 늦어요. 그렇지만 유치한 내용의 '홍보폭탄'은 사양해요. 가수가 무대 위에서 노래로 승부하는 게 정직한 방법이라고 봐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무대 위에 서는 마음이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

이은미는 1989년 '신촌블루스'의 객원보컬로 데뷔해 컨템포러리 뮤직 분야에서 재즈,록,블루스 등으로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그동안 발표한 앨범은 총 13개.지난달 내놓은 최신 미니앨범 '소리 위를 걷다'는 자연미를 물씬 풍긴다. 화장기를 지운 '맨얼굴'에 직접 쓴 가사로 장식돼 있다.

"디지털 세상은 예전보다 편리해졌지만 많은 것을 잃게 만들었어요. 아날로그적인 음악이 삶에 위안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년 동안 지켜본 팬들에게 더 이상 감출 것도 없고요. "

지난달 부산에서 성공적으로 첫 공연을 마친 그는 내년 말까지 국내 20여 도시와 미국 일본 중국 등 전 세계 70개 도시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