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최고의 '치킨공화국'이다. 전국 5만여개의 치킨점에서 하루 60여만마리의 닭이 소비된다. 치킨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본사는 240개에 달하며 치킨점 수는 4만개 남짓한 편의점보다 많다.

예비 창업자들이 선호하는 업종에서도 치킨점은 단연 1순위다. 프랜차이즈에 가입하면 큰 어려움 없이 가맹점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신촌,대학로,건대 먹자골목 등 서울의 핵심상권은 물론 주택가 치킨점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3년 전부터 불거진 트랜스지방 파동에다 웰빙 바람을 타고 튀김 닭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숯불 바비큐와 오븐구이 전문점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오븐구이점은 본격 출시된 지 2년 만에 매장수가 1500개를 넘어섰다.

◆유행에 민감한 치킨시장

1970년대 후반 국내에 들어온 미국 KFC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튀김닭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재래식 통닭집에서 튀겨내던 프라이드치킨과 백숙에서 벗어난 새로운 식문화를 선보였다.

1980년대 이후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소비자의 입맛도 변하기 시작했다. 페리카나，처갓집，이서방 등 양념치킨 브랜드들이 등장해 어린이와 여성들로부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 들어선 전기 바비큐치킨이 새로 가세했고 곧 이어 숯불 바비큐치킨이 나왔다. 코리안숯불，두리안숯불 등의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중반 '건강'을 내세운 기능성 치킨도 등장했다. DHA에디슨치킨，비타민치킨 등은 어린이 건강을 강조하며 빅히트를 쳤다.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교촌으로 대표되는 간장치킨이 인기를 끌었다.

소비자들의 변화무쌍한 입맛만큼이나 치킨업계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프랜차이즈 1세대 중 상당수가 밀려났다. 1세대 5대 강자로 꼽히는 멕시카나,페리카나,처갓집,이서방,스머프 가운데 지금은 페리카나와 멕시카나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치킨은 시장 진입이 쉬워 새로운 치킨이 유행하면 바로 유사 프랜차이즈가 생겨나고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지 못하면 곧바로 퇴출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웰빙바람 타고 오븐구이점 유행

2000년대 중반부터 웰빙을 표방한 치킨 브랜드들이 등장하면서 치킨시장은 저가치킨과 웰빙치킨으로 양분됐다. BBQ치킨은 올리브유를 사용한 '건강'치킨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급증하는 오븐구이와 숯불 바비큐치킨 업체들은 아예 기름을 쓰지 않는다는 것으로 차별화하고 있다. 오븐구이는 1970년대 전기구이 통닭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치킨에 매운맛，새콤달콤한 맛 등의 소스를 입혔다.

오븐구이 치킨업체들은 웰빙 트렌드에 부합하는 점을 적극 홍보하면서 기존 브랜드나 배달치킨 전문점을 잠식해 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20여개 프랜차이즈 본사가 생겨났다. 굽네치킨,본스치킨,구어조은닭,돈치킨 등이 대표적인 업체들이다. 오븐구이 업계 1위인 굽네치킨은 599개,본스치킨은 450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오븐구이 치킨 본사 대부분은 가맹비를 받지 않고 있다. 굽네치킨이 가맹비나 물류보증금을 받지 않자 후발업체들도 뒤따르고 있다. 창업비용이 2500만원 선으로 부담이 적은 것도 점포가 빠르게 늘어나는 배경이다.

2007년 치킨점 시장(매출 기준)에서 2%에 불과했던 오븐구이는 지난해 매출 1조4000억원을 기록,시장점유율이 30%로 뛰어오른 것으로 업계에선 추정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에 4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오븐구이가 치킨시장을 석권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BBQ치킨 관계자는 "트랜스지방 때문에 튀긴 닭보다 오븐에 굽는 치킨이 뜨고 있지만 반짝 유행이라고 보고 있다"며 "그동안 치킨시장에 1~2년 단위로 신제품이 출시됐지만 유행만 지나면 다시 튀김닭이 시장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