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런던 뒷골목의 평범한 하숙생 '아저씨 셰익스피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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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스트리트의 하숙인 셰익스피어 찰스 니콜 지음|안기순 옮김|고즈윈|424쪽|1만5800원
셰익스피어가 한창 잘나가던 마흔 살 무렵.그는 런던 뒷골목의 프랑스 이민자 가정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집주인의 이름은 마운트조이.그 집은 목조주택이면서 머리장식을 만드는 공방이기도 했다.
최고의 극작가로서 삶의 정점에 있던 그가 극장가에서 멀리 떨어진 실버 스트리트의 허름한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이유는 뭘까.
영국의 전기 작가 찰스 니콜은 《실버 스트리트의 하숙인 셰익스피어》에서 한번도 외국 여행을 해본 적 없는 셰익스피어가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이국적 분위기를 맛보기 위해 외국인이 가득한 그 집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셰익스피어는 이곳에 머물면서 1603~1605년 《오셀로》와 《리어왕》 등 다섯 편의 희곡을 완성했다.
셰익스피어가 마운트조이의 집에서 살았던 증거는 뜻밖에도 그의 법정 진술서였다. 1612년 5월11일 월요일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영국 웨스트민스터 소재 소액청구재판소에 계류 중인 한 소송기록에 서명을 남겼다. 그가 8년 전 하숙했던 실버 스트리트의 마운트조이 가족 사이에 벌어진 지참금 다툼과 관련한 증인으로 서명한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그 집에서 하녀로 일했던 한 여성의 진술이었다. 조앤 존슨이라는 하녀는 셰익스피어를 '그 집에 하숙하는 셰익스피어 나리라는 분'으로 지칭했다.
저자는 1909년 발견된 이 하녀의 진술서에 주목해 하숙생이자 가겟집 위층에 사는 신사였고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의 나리였던 한 남자의 모습을 재현해냈다.
그는 '진술서로 시작해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문서를 추적하다 보면 제임스 1세 시대 런던의 어두컴컴한 거리와 좁은 뒷골목을 지나 위층 창문으로 희미하게 불빛이 내비치는 집에 도착하게 된다'며 '400여년의 세월이 지나 흔적은 희미하지만,셰익스피어가 바로 그곳에 살았다'고 쓰고 있다.
그는 또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이 같은 환경이 반영됐다고 얘기한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며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해 뒀다가 작품 속 등장인물과 은유로 승화시켰다. 마운트조이 공방에서의 경험과 당시 유행했던 머리 장식,마운트조이 가족의 결혼 중매인으로 나섰던 일,성적 혼란과 매춘의 정황 등을 문장 곳곳에 녹여냈다.
셰익스피어가 이곳에 있으면서 관찰한 것들은 '그녀가 우유처럼 하얗고 길고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명주실을 짤 때…'(《페리클레스》 4막의 코러스)나 '그대의 하찮은 풀솜 타래,그대의 쓰린 눈을 위한 녹색 사스넷,탕자의 지갑을 장식한 술'(《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5막 1장) 등 많은 작품에 등장한다. 그는 풀솜 타래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사스넷과 장식술까지 눈여겨 보았던 것이다.
이 책은 '인도하고도 바꾸지 않겠다'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인생을 위대한 문학가가 아니라 하숙집의 평범한 40대 남자로 재조명한 이색 전기다. 연대순으로 기록한 통상의 전기 형식과도 다르다. '도시 희극'이 유행하던 당시 연극계의 풍조와 하숙집 아래층의 공방 모습,가족 소송 사건에 증인으로 얽히게 된 이유,주변 동료들의 눈에 비친 셰익스피어의 모습 등을 퍼즐조각처럼 맞춰나간다.
진술서 한 장에서 출발해 당시의 상황과 심리상태 등을 부챗살처럼 훑어나가는 과정.탐정 같은 그의 행로를 따라가다 보면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그의 행적이나 평범한 듯 보이는 삶의 단편'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최고의 극작가로서 삶의 정점에 있던 그가 극장가에서 멀리 떨어진 실버 스트리트의 허름한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이유는 뭘까.
영국의 전기 작가 찰스 니콜은 《실버 스트리트의 하숙인 셰익스피어》에서 한번도 외국 여행을 해본 적 없는 셰익스피어가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이국적 분위기를 맛보기 위해 외국인이 가득한 그 집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셰익스피어는 이곳에 머물면서 1603~1605년 《오셀로》와 《리어왕》 등 다섯 편의 희곡을 완성했다.
셰익스피어가 마운트조이의 집에서 살았던 증거는 뜻밖에도 그의 법정 진술서였다. 1612년 5월11일 월요일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영국 웨스트민스터 소재 소액청구재판소에 계류 중인 한 소송기록에 서명을 남겼다. 그가 8년 전 하숙했던 실버 스트리트의 마운트조이 가족 사이에 벌어진 지참금 다툼과 관련한 증인으로 서명한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그 집에서 하녀로 일했던 한 여성의 진술이었다. 조앤 존슨이라는 하녀는 셰익스피어를 '그 집에 하숙하는 셰익스피어 나리라는 분'으로 지칭했다.
저자는 1909년 발견된 이 하녀의 진술서에 주목해 하숙생이자 가겟집 위층에 사는 신사였고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의 나리였던 한 남자의 모습을 재현해냈다.
그는 '진술서로 시작해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문서를 추적하다 보면 제임스 1세 시대 런던의 어두컴컴한 거리와 좁은 뒷골목을 지나 위층 창문으로 희미하게 불빛이 내비치는 집에 도착하게 된다'며 '400여년의 세월이 지나 흔적은 희미하지만,셰익스피어가 바로 그곳에 살았다'고 쓰고 있다.
그는 또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이 같은 환경이 반영됐다고 얘기한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며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해 뒀다가 작품 속 등장인물과 은유로 승화시켰다. 마운트조이 공방에서의 경험과 당시 유행했던 머리 장식,마운트조이 가족의 결혼 중매인으로 나섰던 일,성적 혼란과 매춘의 정황 등을 문장 곳곳에 녹여냈다.
셰익스피어가 이곳에 있으면서 관찰한 것들은 '그녀가 우유처럼 하얗고 길고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명주실을 짤 때…'(《페리클레스》 4막의 코러스)나 '그대의 하찮은 풀솜 타래,그대의 쓰린 눈을 위한 녹색 사스넷,탕자의 지갑을 장식한 술'(《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5막 1장) 등 많은 작품에 등장한다. 그는 풀솜 타래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사스넷과 장식술까지 눈여겨 보았던 것이다.
이 책은 '인도하고도 바꾸지 않겠다'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인생을 위대한 문학가가 아니라 하숙집의 평범한 40대 남자로 재조명한 이색 전기다. 연대순으로 기록한 통상의 전기 형식과도 다르다. '도시 희극'이 유행하던 당시 연극계의 풍조와 하숙집 아래층의 공방 모습,가족 소송 사건에 증인으로 얽히게 된 이유,주변 동료들의 눈에 비친 셰익스피어의 모습 등을 퍼즐조각처럼 맞춰나간다.
진술서 한 장에서 출발해 당시의 상황과 심리상태 등을 부챗살처럼 훑어나가는 과정.탐정 같은 그의 행로를 따라가다 보면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그의 행적이나 평범한 듯 보이는 삶의 단편'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