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한 병원에서 열흘 만에 깨어났다. 뭔가 허전했다. 열손가락이 모두 잘렸다. 자살을 생각했다. 꿈에 나타난 어머니."홍빈아,너는 오래 산다. "

산악인 김홍빈씨(44)는 1991년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6194m) 단독 등반에 나섰다. 정상 400여m를 남기고 체력이 바닥났다. 텐트 치고 하루만 쉬었다 재도전하자고 했던 게 실수였다. 의식을 잃은 채 미국 등반대에 의해 구조됐다. 열손가락은 동상이 걸렸고 폐와 뇌에는 물이 찼다. 석달 동안 7차례 수술을 받고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삶은 고통 자체였다.

1997년 가을 광주 무등산에 올랐다. 한 등산객이 어린 아들에게 한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저렇게 열심히 살지 않느냐."

그해 유럽 최고봉인 엘브루스봉(5642m)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남미 아콩카과,북미 매킨리 등 세계 7대륙의 최고봉 완등 기록을 세웠다. 장애인으론 처음이다.

다음 목표는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완등.2006년부터 14좌 중 가셔브룸 등 4개 고봉을 차례로 올랐다. 지난 1일 다섯 번째로 다울라기리 정상에 우뚝 섰다. 김홍빈은 남은 9좌도 오를 것이다. 열손가락 없이도.

김수찬 오피니언부장 ks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