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황당한 얘기를 늘어놓거나 뻔한 거짓말을 주워섬기는 사람에게 우리는 "소설 좀 그만 써라!" 라고 면박을 준다. 문학을 폄하해서가 아니라 소설은 원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란 생각이 뇌리에 박혀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 황당하고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미래의 현실을 예측한 사례가 무수히 많이 발견된다. 특히 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지식이 결합하여 탄생된 '미래 소설', 혹은 공상과학소설(SF)은 종종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여 독자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예를 들어 보자.로봇이 인간의 삶에 관여하는 세상은 이미 오래 전에 문학 속에서 예고되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겠지만, 로봇(robot)이란 단어만 해도 과학자가 아닌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만들어낸 것이다. 러시아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슬라브어에서 '라보타'(rabota) 혹은 '로보타'(robota)는 '노동'을 의미한다. 차페크는 미래의 세상을 다룬 드라마에서 오늘날의 복제인간과 유사한 인조인간에게 로봇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의 드라마에서 로봇은 '대신 일을 해 주는 존재'를 의미했다.

차페크의 상상력을 계승한 세계적인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아예 '로보틱스'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첨단과학 분야 중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로보틱스' 역시 로봇공학 전문가가 아닌 소설가의 상상력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차페크에서 아시모프로 이어지는 과학적 상상력은 더 나아가 '로봇''A.I.(인공 지능)''아이 로봇'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탄생시켰다.

또 러시아 작가 보그다노프는 소설 '붉은 별'에서 로켓공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치올코프스키의 로켓 설계도보다 7년이나 앞서 우주 비행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SF와 얽힌 이런 식의 예언적 에피소드들은 러시아 문학 밖에서도 엄청나게 많이 발견된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같은 것들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SF란 원래가 미래의 과학상을 앞서 제시하는 장르이므로 그 속에 예언적 성찰이 담겨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SF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미래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이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미하일 불가코프의 '개의 심장'은 인간과 동물 간의 장기이식을 둘러싼 엽기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불가코프는 미래의 모습을 예고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혁명 이후 소련의 사회상을 풍자하기 위해서 장기이식의 문제를 다룬 것이지만 기묘하게도 그의 이야기는 많은 점에서,특히 윤리의 측면에서 21세기 생명과학의 현실을 예고하고 있다.

불가코프보다도 더욱 흥미로운 것은 푸슈킨이다. 푸슈킨은 1830년의 소설에서 당대 러시아의 도로 상황을 개탄하면서 '500년쯤 후'에는 다음과 같이 꿈같은 세상이 펼쳐지리라 내다봤다.

『~문명의 혜택이

이 땅의 구석구석 미칠 때면

우리나라의 도로도 차츰 몰라보게 달라지리라.

포장도로가 거미줄처럼

러시아를 방방곡곡 이어주고

철교는 거대한 호를 그리며

강물을 뛰어넘으리라

육로는 산을 가르고 강 밑에는

대담한 굴이 뚫리게 되리라.』

푸슈킨처럼 과학과는 무관한 작가가 이토록 선명하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과학적 지식을 갖춘 SF 작가의 통찰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듯 싶다.

요즘 들어 '상상한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 말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과학적인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레토릭인지,그것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날 가장 앞서가는 뇌 연구에서부터 가장 대중적인 광고 카피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의 힘을 강조하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상상력의 힘이 그토록 강력하다면,단순히 산술적인 시각에서만 보더라도, 사람들이 좋은 상상을 많이 하면 할수록 미래의 모습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자먀틴의 '우리들' 같은 SF의 고전들은 하나같이 미래의 모습을 불길하게 보여주는 것일까. 왜 조슈아 스파노글이나 로빈 쿡 같은 메디컬 스릴러의 거장들은 하나같이 고도로 발달한 의학의 비윤리적인 측면을 과장해서 보여주는데 상상력을 쏟아붓는 것일까. 왜 '딥 임팩트' 등등의 모든 재난영화 스토리들은 그토록 섬뜩하게 지구의 종말을 예언하는 것일까.

상상한 대로 이루어질까봐 겁이 나게 만드는 스토리들이 자꾸만 씌어지는 이유는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 과학 기술의 발전은 속도 제한을 모른다. 어찌나 빠른지 그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할 겨를도 없다. 그래서 소설이 필요하다. 과학의 발전 양상을 그 어떤 거울보다 선명하고도 비판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흥미롭게 비쳐주는 SF가 필요하다. 성찰 없는 발전은 궁극적으로 파멸을 향해 치닫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가들의 불길한 예측이 정말로 현실화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어째서 그런 소설들이 씌어지고 있는지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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