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3가 보석거리.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8번 출구로 나오면 길 양옆으로 보석 판매점이 즐비하다.

겉보기에는 허름하지만 이곳은 국내 보석(jewelry)산업의 산실로 꼽히는 곳이다. 한동안 원화 약세와 귀금속 가격 상승으로 이 일대는 귀금속을 팔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기도 했다.

보석거리 내 보석백화점 8층에 있는 미래보석감정원에 들어서자 책상마다 보석이 수북이 쌓여 있다. 철통 같은 보안 속에 감정사들이 다이아몬드를 감정하느라 여념이 없다.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집어든 다이아몬드를 현미경으로 요모조모 뜯어보는 시선이 날카롭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감정사는 총 9명.이들과 함께 감정 및 교육 업무까지 총괄하는 구창식 원장(51)은 25년 경력의 베테랑 감정사다. 국가공인 보석감정사 자격증은 기본이고 미국 보석감정사(GG-GIA),미국 보석평가사(MV),국제보석학회 감정사(EG-IGI)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

보석류는 사실 그 가치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 희귀 보석은 부르는 게 값인 경우도 많다. 눈꼽만한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봉급 생활자의 몇 달치 소득을 넘어선다. 최상급 다이아몬드는 1캐럿(carat · 0.2g) 짜리가 1000만원 선,클수록 가격은 급증해서 3~5캐럿이면 억대를 호가한다. 그러니 한 치 오차 없는 감정으로 유명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감정사'로 불리는 구 원장조차 등급을 매길 때면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고 고백할 정도다.

▶경기는 좋지 않은데 귀금속 가격은 오히려 크게 올랐습니다.

"주얼리 업계도 사실 작년 하반기부터 해외에서 불어닥친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침체로 귀금속 판매가 평소보다 30~40%가량 급감하는 등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원화 약세 등으로 귀금속 값이 많이 올라 수요가 더욱 줄어들었고요. 장롱 속 보석들을 꺼내 파는 사람들이 많아져 감정 업무가 오히려 늘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실제 감정을 맡기는 고객 가운데 개인보다는 도매상이나 전문 딜러 등의 비중이 높아 경기에 상당히 민감한 편입니다. "

▶1998~1999년 외환위기 때 창업을 하셨더군요.

"제가 스물일곱 살이던 1985년 아는 분의 소개로 당시 유일한 보석감정원이던 W감정원에 들어갔죠.결혼하고 신혼 여행을 다녀온 직후였지요. 그땐 다이아몬드의 'ㄷ'자도 몰랐지만 당시 원장이자 스승이셨던 고(故) 오희남 선생의 지도 아래 감정 업무의 기초부터 익혔습니다. 일본에서 혼자 일본어를 공부해가며 미국 감정사를 딴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하지만 오 원장의 건강이 악화하고 주변 친 · 인척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사직서를 써야 했지요. 때마침 외환 확보를 위한 '금모으기 운동'이 펼쳐지면서 감정 업무가 폭증했던 것은 천운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네요. "

▶실제 보석 감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사실 감정원에서 접수하는 보석의 약 80%는 다이아몬드예요. 루비 사파이어 등 일반 유색 보석도 감정서를 발부하기는 하지만 진위 판별을 비롯한 기초적인 선에서 감정을 마무리짓습니다. 따라서 다이아몬드를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먼저 정교한 전자저울로 무게(carat)를 잰 뒤 마스터스톤(기준석)과 비교해 색깔(color)을 판별합니다. 아울러 현미경으로 다이아몬드 내부의 흠집 등을 살펴 투명도(clarity)를 조사하고 마지막으로 보석의 깎인 정도(cut)까지 컴퓨터를 통해 측정하면 최종 감정서가 만들어집니다. "

국제 기준에 따른 보석감정서는 크게 무게,색깔,투명도,깎인 정도 등 4가지 기준에 따라 각각 등급을 부여한다. 이들 기준의 영문 이니셜을 묶어 '4C'라고 표현한다. 무게는 캐럿 단위로 표시하며 색깔은 다이아몬드의 이니셜을 딴 D등급부터 시작해 E~Z등급까지 매겨진다. 투명도 역시 FL(Flawless)에서 I3(Imperfect3)까지 무려 11개 등급으로 나뉜다. 같은 캐럿의 다이아몬드라도 등급에 따라 수천만원까지 가격 차이가 난다.

구 원장은 "D~F등급은 비전문가들이 볼 때 사실상 구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객관성 확보를 위해 하나의 다이아몬드를 놓고 3명의 감정사들이 동시에 감정하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이아몬드의 진위 여부 정도만 판별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없나요.

"있습니다. 먼저 종이에 볼펜으로 선을 긋고 난 뒤 다이아몬드를 엎어서 올려 놓습니다. 그러면 투명한 다이아몬드를 통해 볼펜으로 그린 선이 굴절돼 보일 텐데요. 일반 큐빅 지르콘(다이아몬드 대용품)은 둥근 타원으로 보이는 데 반해 진짜 다이아몬드는 특정한 모양 없이 여기저기로 확산돼 나타납니다. "

실제로 이 방법으로 시험해 보니 맨눈으로도 진짜 다이아몬드와 가짜 다이아몬드를 쉽게 구별해낼 수 있었다. 구 원장은 또 평소 다이아몬드를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팁(tip)도 소개했다. 다이아몬드는 그 특성상 기름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손때나 기름때가 쉽게 묻는다. 이럴 때에는 헝겊에 알코올을 묻혀 닦으면 깨끗이 제거된다.

▶여러 가지 귀금속 가운데 특별히 선호하는 게 있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오팔을 가장 좋아합니다. 다이아몬드는 투명하기 때문에 주변의 빛을 반사해 광채를 내지만 오팔은 그 자체로 영롱하고 오묘한 빛을 내거든요. 마치 보석 안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그 찬란한 아름다움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죠."

▶지금까지 감정한 보석 가운데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작년에 무려 24.7캐럿짜리 대형 다이아몬드를 감정한 적이 있어요. 보석 수집가로 유명한 김동섭 한국운석광물연구소장이 해외에서 직수입한 물건인데 인천세관 직원 3명이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 가져와 감정을 의뢰했지요. 당시 관세만 7억원을 냈다고 하니 실제 가격은 아마 수십억원을 호가할 것입니다. "

▶보석감정사는 직업으로서 어떤 매력이 있다고 보세요.

"한 곳에 가만히 앉아 현미경만 봐야 하는 직업이 뭐가 그리 좋으냐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보석도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게 없습니다. 저마다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는 보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감정을 하다가도 절로 감탄사가 나올 때가 많아요. 우리 사회에서 판사나 의사가 존경받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항상 범죄자나 환자를 상대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에 비하면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하!"

▶보석감정업계의 좋지 못한 관행에 대한 비판도 최근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실제 감정업계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감정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낮다 보니 일부 판매업자의 유혹에 넘어가는 사례가 아직도 종종 발생하곤 해요. 판매업자들이 저질의 보석을 사들여 감정사를 통해 높은 등급을 받은 뒤 시장에서 비싸게 팔아 차익을 남기는 거죠.고객이 보석에 대해 잘 모르는 걸 악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경기는 나쁜데 귀금속 값이 비싼 요즘 같은 때에는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고객도 적지 않습니다. 보석감정사들이 높은 윤리의식으로 무장해 이 같은 유혹을 떨쳐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전문가로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판매업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끊지 못하면 업계는 공멸할 수밖에 없어요. 실력은 외국 감정사에 전혀 뒤지지 않는데 일부 업자들의 좋지 못한 관행으로 인해 고객들이 먼저 미국 등 선진국의 감정서를 요구하는 사례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업계차원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지만 먼저 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자긍심과 윤리의식을 갖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

글=이호기/사진=정동헌 기자 hglee@hankyung.com


[ 보석감정사의 세계 ]
국내 200여명 활동…경력 쌓일수록 몸값 높아져 평생직업 '장점'

보석감정사는 심한 색맹만 아니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직업이다. 다만 실내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일이 대부분이라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이 적합하다. 보석의 원산지,천연보석 구별 능력이나 화학적 · 물리적 · 공학적 성질 등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실제로 보석감정사로 일하려면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발급하는 보석감정사 자격증(AGK)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 대학의 보석감정과,보석감정딜러&디자인과 등에서 공부하거나 국내외 사설 교육기관에서 자격증 준비 및 감정사 업무 관련 각종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다. 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보석감정사 자격으로는 GG-GIA(미국 보석감정사),FGA(영국 보석감정사),MV(미국 보석평가사) 등이 있는데,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실력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을 수 있으므로 활동영역을 넓히는 데 유리하다.

현재 국내 보석감정원은 30~40여개.평균 5~6명의 보석감정사가 근무하고 있어 채용인원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열정이 있다면 일할 곳은 많다. 구창식 미래보석감정원장은 "보석을 정말 좋아한다는 구직자가 있어서 당초 채용계획이 없었는데도 그 열정에 반해 채용한 적도 있다"며 "열정과 윤리의식으로 무장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석감정원 외에도 보석감정사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보석감정사들이 대형 백화점이나 보석 제조 · 유통회사,교육기관,도 · 산매업체 등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유통 쪽으로 진출하려면 외국어,소매상 쪽은 유통,디자인 계통은 보석의 특성이나 색감 등을 위주로 달리 공부해야 한다.

전망도 밝은 편이다.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보석 소비가 느는 데다 합성보석 생산기술이 발달해 보석의 진위를 판별하는 감정사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우리나라 보석시장은 1991년 시장을 개방한 이후 꾸준히 성장해 현재 3조5000억~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만 보석이라는 재화의 특성상 경기에 민감한 편이어서 고용의 안정성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실력만 있다면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몸값이 높아져 평생직업으로서의 장점은 더욱 커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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