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 정치부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가 제시한 ‘친박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를 거부했다.외형상 거부 이유는 경선을 통해 원내대표를 선출토록 한 당헌 당규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미 친이계 안상수 정의화 황우여 의원 등이 출마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이들을 주저앉히고 인위적으로 김무성 의원을 추대하는 게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박 전대표는 원칙론자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의 이런 거부 논리를 곳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원칙을 내세워 김무성 카드를 사실상 무산시킨 거라는 게 정설이다.박 전 대표가 강연을 30여분 앞두고 돌연 이런 입장을 표명한 이유는 뭘까.

박 전 대표의 발언을 전한 이정현 의원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알려진 게 아니냐”며 “국정운영과 당 운영을 잘해야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본질적으로 4.29선거참패 등 여권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국정운영의 잘못에 있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만큼 김무성 카드는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여기에는 여권 위기를 초래한 책임은 이 대통령과 당의 주도세력인 친이계에 있다는 시각이 자리하고 있다.

친박 인사에 고위직 하나 주는 눈가리고 아옹식 임시방편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이 대통령과 친이계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친박에 자리하나 나눠주는 식으로 전면적인 쇄신을 피해가려해선 안된다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박 전 대표가 며칠전 초선의원들의 과감한 쇄신 주장에 “좋은 안이 나왔으니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초선들이 제기한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 지양과 밀실 공천 폐지,코드인사 탈피와 능력위주의 인선 등 전면적인 쇄신을 이뤄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아울러 박 전대표의 김무성 카드 거부에는 신뢰관계 회복없는 당 화합은 임시봉합에 불과하다는 인식도 담겨있는 것 같다.신뢰의 핵심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관계회복이다.

두 사람은 당내 경선에서 혈투를 벌인 뒤 점점 멀어져만 갔다.몇차례 화해를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관계는 더 악화됐다.두 사람사이의 신뢰는 회복하기 힘든 상황까지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김무성 카드의 수용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다.친박을 포용했다는 친이측의 명분만 살려줄 뿐 친박입장에선 득될 게 없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한 것 같다.

어차피 미디어법 등 6월 여야간 정면승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마스크법 통신비밀보호법 미디어법 등은 여야 합의가 쉽지않다.강행처리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

친박계 원내대표가 국회상황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할 경우 자칫 친박계 예상되는 ‘날치기 처리’의 책임을 떠 안을 수 있다.원칙주의자인 박 전 대표로선 정치적 부담이다.

물론 청와대와 당 지도부늬 의전적 결례도 박 전 대표를 자극했다는 지적도 나온다.청와대 정무팀은 김무성 카드를 당청회동에 올리기 전에 적어도 친박계의 리더인 박 전 대표의 양해를 구했어야 했지만 이게 생략됐다.박 전대표가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됐다면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친박카드 자체를 거부한 게 아니라 김무성 카드였기에 거부했다는 주장도 나온다.김 의원은 친박계 중진이지만 공격적인 스타일이 신중한 박 전대표와는 잘 맞지 않는다.두사람 사이가 멀어졌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일각에서는 헛발질하는 여권내 주도세력과 대립각을 세우고 가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여러가지로 고전하고 있는 친이 진영의 국정운영에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의지표현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대통령이 내민 손을 뿌리친데 따른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김무성 카드를 거부한 데는 이런 전략적 고려가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없지않다.

친이측은 “친이와 대립각을 세우고 가겠다는 게 박 전 대표의 전략이라면 친이진영이 무엇을 제시해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이 대통령과 박 전대표의 화해는 사실상 물건너가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섣불리 갈라 설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탈당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없다.밉든 곱든 당내에서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엔 친박내 이견이 없는 것 같다.한나라당은 두나라당이 점점 고착화되는 형국이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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