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지 않았다. 글로벌 판매가 나쁜 상황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경기회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실물은 꼼짝도 안하고 있다. 본격적인 경기 회복까지 2년이 소요될 것이다. "(남용 LG전자 부회장) "글로벌 각 영업망에서 들려오는 얘기가 들쭉날쭉이다. 주요국 금융시장과 일부 경제지표가 반등하고 있지만,실물경제는 적어도 6월 말 이후 확실한 방향이 잡혀야 뭐라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 "(양승석 현대자동차 사장)

한국경제신문이 10일 국내 주요 20개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세계 경기 상황과 예상 회복 시점을 조사한 결과 "지금은 금융 부문이 회복되는 단계일 뿐 실물 경기 회복은 내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금융→원자재→실물'의 경기 회복 사이클로 볼 때 지금의 국면은 금융 회복의 초기 단계일 뿐이라는 진단이 대세였다.
"금융위기 벗어났지만‥실물경기 연내 회복 어렵다"
◆"경기 낙관 아직 이르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1~2개월 전에 비해 지표가 좋아졌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며 "비교 시점을 지난해 같은 기간으로 보면 여전히 경기가 나쁜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종갑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은 "IT(정보기술) 경기가 바닥을 다지고 있는 중이며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겠지만,올해 중 본격적인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종우 삼성전기 사장과 한준호 삼천리 부회장,이경상 신세계 이마트부문 사장 등도 "일부 금융지표가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실물경기가 나아지는 조짐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문별 · 시장별로 회복 속도 달라

경기 회복 조짐이 미세하게나마 가시화하기 시작했다는 낙관론도 제기됐다. 이종희 대한항공 사장은 "항공 수출 화물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경기가 한결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서영태 현대오일뱅크 사장도 "적어도 국내는 경기 침체 하락세가 멈춘 것 같다"며 "증권시장이 최근 1~2개월 좋아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고 분석했다.

이수일 동부제철 사장 역시 "연초 70%를 밑돌았던 공장 가동률이 최근 80%를 넘어섰다"며 "수출도 조금씩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민 한진해운 사장은 "해상물동량이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기 회복의 속도가 시장별,품목별로 다르다는 지적도 있었다. 백우석 OCI(옛 동양제철화학) 사장은 "전체적으로 볼 때 작년 말과 올초가 가장 나빴고 2월부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더니 4월 들어 확실히 좋아졌다"면서도 "자동차용 폴리우레탄 등 소재 부문은 여전히 상황이 좋지 못하다"고 말했다.

배영호 코오롱 사장은 "주요 해외시장의 실물 경기상황은 일본이 가장 나쁘고 미국과 유럽이 비슷한 반면,경기부양책을 적극적으로 쓰고 있는 중국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원자재 시장을 비롯한 산업소재 분야가 먼저 호전될 것"이라며 "소비재와 서비스 부문이 회복되려면 1년 정도가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LG CEO들이 가장 '신중'

그룹별로도 경기에 대한 인식이 엇갈렸다. 삼성의 경우 CEO별로 회복 시점 전망이 달랐지만 경기가 바닥을 다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인식을 같이했다. 이윤우 전자 부회장과 박종우 전기 사장은 'U자형(완만한 회복)'을,윤순봉 석유화학 사장과 김인 SDS 사장은 '나이키 커브(완만한 회복 뒤 급격한 상승)'를 지지했다.

이에 비해 LG그룹 계열사 CEO들은 "경기 회복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으며 회복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권영수 디스플레이 사장은 "시장을 낙관할 수 없으며 세계 경기가 연내에 회복될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허영호 이노텍 사장과 박종응 데이콤 사장 역시 "일부 금융 지표들이 좋아지고 있다지만 실물 경제로 옮겨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환율 하락은 '양날의 칼'

1200원대로 떨어진 원 · 달러 환율과 관련해서는 "위기이자 기회"라는 의견이 많았다. 환율 하락은 수출 기업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악재지만 선진국 시장에 유동성이 확보됐다는 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늘어난 유동성이 매출 확대로 이어질 경우 환율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는 것.김군호 아이리버 사장은 "환율이 하락하면 원자재 값이 떨어지는 이점도 있다"며 "1200원대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향후 환율에 대해서는 "천천히 하향 안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았다. 윤순봉 사장은 "급격한 추락도,상승도 없이 서서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