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폴란드 남부 마우폴스키에주(州) 아우슈비츠 수용소. 감시관들의 눈을 피해 한 남자가 편지가 담긴 병을 담벼락에 황급히 숨긴다. 내일이면 가스실로 걸어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죽음을 예감한 남자가 기어코 남기려고 했던 마지막 삶의 흔적이다.

지난 4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담벼락을 허물던 인부가 발견한 이 편지는 세계인들의 의문을 낳았다. 누가 남겼나, 왜 남겼나, 이들은 가스실로 향했을까, 아니면 아직 살아있을까.

AFP통신은 10일 “병 속에 담긴 편지의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보도했다.

1943년 수용소로 끌려갔던 와클로 소브작(84)씨는 그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제 곧 죽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존재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다”며 당시의 심정을 토로하는 소브작씨의 팔뚝에는 나치가 새긴 수인번호 문신이 남아있다.

병에 담긴 편지의 날짜는 1944년 9월. 소브작씨를 포함한 폴란드인 6명과 프랑스인 1명의 이름과 수인번호가 쓰여 있다. 당시 아우슈비츠에 감금됐던 수용자들의 나이는 18세에서 20세였다.

편지 속 인물 중 세 명은 아직도 생존해있다. 소브작씨 외에도 프랑스인 알버트 벳시디(84)씨와 폴란드인 카롤 체칼스키(83)씨도 회색빛 그날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벳시디씨는 편지가 담긴 병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AFP에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난 그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기억난다”며 “하지만 그 편지에 내 이름이 쓰여 있다는 건 내 생애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벳시디씨는 편지를 쓸 때 옆에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는 이유는 전쟁 속 꽃핀 폴란드인과의 우정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폴란드인들이 식료품창고에서 마멀레이드 잼을 훔쳐오면 내가 숨겨주곤 했다”며 “내 이름을 쓴 것은 그들 나름의 감사의 표현일 것”이라고 말했다.

체칼스키 씨는 “우리는 갖은 노동에 이용됐다. 한 건물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완성에 15일쯤 걸린 것 같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프랑스인이 한 명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 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스웨덴의 아이린 잔코위악(49)씨는 편지 속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브로니슬로 잔코위악, 12년 전 숨진 그녀의 아버지였다. 잔코위악씨는 “필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내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였다. 1945년 1월까지 독일 나치스는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자행하며 이곳에서만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된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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