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계의 움직임은 부산하다. 10여년 만에 구조조정이 뜨거운 이슈로 재부상하자 해당 기업들은 재무구조 개선책 마련에 여념이 없다.

멀쩡한 기업들도 경제위기가 장기화할 경우에 대비해 대책을 세우고 비상경영체제로 굴러가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위기를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기 위한 그린 에너지 투자 등 적극적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재계는 이렇게 바삐 움직이지만 재계의 입이요,때로는 브레인 역할을 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요즘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외환위기 직후 5대 그룹의 빅딜을 중재할 때의 전경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 전경련 간부를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구조조정이 제일 큰 이슈가 되고 있는데 전경련이 너무 조용한 거 아닙니까?"그 간부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구조조정이요? 그건 회의에서는 말도 꺼내기 힘들어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구조조정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원칙적인 언급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전경련 입장에서 구조조정은 한마디로 금기(禁忌)가 돼버렸다. 어떤 식이건 입장을 발표하는 순간 해당 회원사들을 난처하게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기업 임원은 이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구조조정은 결과에 따라 재계의 순위가 바뀌는 게임이니 전경련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과거 빅딜의 후유증도 치료되지 않은 상태라 더 그럴 것이다. "

외환위기 직후 진행된 빅딜을 말하는 것이다. 1998년 말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정부가 제시한 9개 업종 빅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딜은 흐지부지되고 그나마 성사된 반도체 부문의 그룹 간 교환은 두고두고 많은 논란거리를 남겼다.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인수 · 합병한 하이닉스반도체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래서 전경련이 더더욱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말을 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대목이다.

오너와 CEO(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하는 전경련 회장단 회의가 오는 21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날 회의 주제에도 구조조정은 빠져 있다. 구조조정 시즌 전경련의 시름은 깊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