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른 노래/ 내가 부르지 못한 노래들이/ 우르르/ 불 켜들고 내달려오는/ 나일 줄이야/ 이 찬란한 후회가 나일 줄이야.'(고은 <자화상>)

우리나라 시인들은 유난히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시를 많이 남겼다. 화가들이 자신을 모델로 한 자화상을 그리듯이 많은 시인들은 자신을 소재로 한 시를 쓴다. 윤동주는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라고 시 <자화상>에서 노래했다. 생전 나병을 앓았던 한하운도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나의 얼굴'이라는 구절을 담은 시 <자화상>을 남겼다.

미당 서정주는 <자화상>에서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 /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라고 썼다. 노천명도 <자화상>에서 '구리처럼 휘어지며 꾸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고 토로했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서울대 겸임교수)는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의 기획 특집 '시인들의 자화상,시로 쓴 자화상'에 기고한 글 '자화상의 심리학적 의미'에서 "영미의 유명 현대시에 비해 한국 현대시에 유독 대중화된 <자화상>이라는 시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 박사는 그 이유를 '자신을 객관화하며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한국인의 심성'에서 찾았다.

이 박사는 시인의 자의식이 품고 있는 이중적 면모를 지적하며 "고통,상처,상실로 형성된 시인의 자의식은 시를 샘솟게 하는 원천이지만 동시에 너무 깊이 빠져서 무의식의 콤플렉스에 사로잡히게 되면 시인 자신의 무덤을 파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또 심리분석에 입각해 시인들이 단명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병이나 사고로 일찍 생을 마치거나 자살한 시인들이 유독 많은 까닭을 '시작(詩作)은 의식과 무의식을 무수히 넘나들며 이루어지기 때문에,자칫 어두운 혼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수가 있어서'라고 분석했다.

<시인세계>는 이 박사의 기고와 더불어 시인 10명이 '자화상'을 주제로 쓴 신작시 10편도 함께 실었다. 김규동 시인은 <자화상>에서 '어린 시절 공부 못하는 장난꾸러기였던 나는/ 85살 되어서도/ 온갖 장난이 하고 싶어 사방 두리번거리는 도깨비다'라고 말했다. 김남조 시인은 <처음 써 보는 자화상>에서 '나의 감수성 이 하나가/ 쇠퇴 없이 오늘에 이르렀고/ 내일에 이어간다면/ 얼마동안은 더 영광스럽게도/ 내가 시인의 반열에 머물리라'라고 썼다. 이근배 시인은 <자화상>에서 '나는 예 아닌 것만 보고/ 예 아닌 것만 듣고/ 예 아닌 것만 말하고/ 예 아닌 짓거리만 하며 살아왔다'고 썼다. 문정희 시인은 <창녀와 천사-최근의 자화상>에서 '천사이며 창녀인/ 눈부신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이라고 읊기도 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