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한국은행이 막대한 자금을 풀었지만 생산이나 투자쪽에 흘러들어가지 않고 은행권에만 맴돌아 단기자금 증가율이 3년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1일 한은은 '3월 통화 및 유동성 지표 동향'에서 지난 3월 M1(협의통화)이 평잔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4.3%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증가율은 2005년 8월(14.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M1은 현금통화와 은행의 요구불예금,수시입출금식예금 등을 더한 통화지표로 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금식예금 등 단기 결제성예금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M1 증가율은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난해 9월 2.7%였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올 들어선 1월 8.3%,2월 9.8%에 이어 3월엔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김화용 한은 금융통계팀 과장은 "금융위기 여파로 돈을 굴릴 투자처가 마땅치 않다 보니 자금을 단기로 운용하는 현상이 뚜렷하다"며 "3월엔 기업들이 법인세 납부를 위해 자금을 결제성예금에 넣어놓은 영향도 컸다"고 설명했다.

반면 M1에다 머니마켓펀드(MMF),2년 미만 정기예금,적금 상품 등을 포함하는 M2(광의통화)는 평잔 기준 증가율이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3월 M2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1.1% 늘어나 2월의 11.4%보다 소폭 낮아졌다. M2 증가율은 지난해 5월(15.8%)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한은은 본원통화 공급은 대폭 늘렸지만 은행 대출 등의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M2 증가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3월 본원통화는 65조6000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32.5%나 늘었다. 한은은 M2 증가율 둔화가 지속돼 지난달엔 10% 중반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한은이 이날 함께 발표한 '4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의 기업 원화대출 증가액은 3조2181억원으로 전달의 2조724억원보다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4월의 10조9000억원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지난달 중소기업 대출은 신용보증 지원 확대에 힘입어 3조1990억원 늘었지만 대기업 대출은 191억원 증가에 그쳤다.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3월 1조9000억원에서 4월 1조1000억원으로 축소됐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3월 2조5000억원에서 4월 1조2000억원으로 줄어든 영향이 컸다.

한편 은행 수신은 3월 5조1000억원 감소에서 4월 4조7000억원 증가로 돌아섰다. 수시입출금식 예금이 4조1000억원 늘어난 데다 은행들이 저금리를 바탕으로 양도성예금증서(CD)를 대거 발행한 여파로 풀이된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