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됐을까. 한 기업에서 사장이 영업사원들의 발을 닦아주며 격려하는 세족식(洗足式) 행사를 가졌다. 그 회사가 추진하던 서번트(servant · 하인) 리더십 활동의 일환이었다.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해도 그것은 서번트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족식을 하고 남은 것? 글쎄,그 사장의 손에 생긴 무좀균 아니었을까.

서번트 리더십을 '하인 리더십' 혹은 '섬김 리더십'이라고 단순 번역해선 곤란하다. 상사가 하인처럼 봉사하며 부하를 섬기는 활동이 핵심인 것으로 잘못 인식될 수 있다. 나쁠 것은 없지만 그런 식이면 조직 성장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서번트 리더십은 미국의 초창기 컨설턴트인 로버트 그린리프가 1970년께 만든 리더십 이론이다. AT&T에서 은퇴해 각 기업에 경영자문을 해주던 그는 현대 경영자들에게 필요한 리더십을 고민하다 어느 날 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동방으로의 여행'을 읽게 됐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시대의 스승상(像)을 찾아 동방으로 여행을 떠난 순례자 3명은 동행하던 하인 레오가 사라진 뒤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누구를 만나야 할지,식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그때서야 순례자들은 그동안 이런저런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던 하인 레오가 그들의 리더였음을 깨닫게 됐다. 그들은 한 교단의 지원을 받아 레오를 찾아 시대의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다. 3년이 지나도 레오를 만나지 못했고 남은 돈을 돌려주려 그 교단을 찾았다. 거기서 그들을 기다린 교단 지도자가 바로 레오였다.

이 소설을 읽고 그린리프는 무릎을 쳤다. 변화 빠른 세상에서 조직을 성장시키려면 부하들의 독립심과 결단력을 '세심하게' 키워주는 '느슨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직원들이 각자의 능력으로,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있는 리더가 그런 장치를 만들고 동기를 부여하며 어려울 때 결정적으로 슬쩍 도와주는 것이 바로 서번트 리더십인 것이다.

탄생한 지 40년 남짓 되는 서번트 리더십 이론은 '디지털'과 '글로벌'로 상징되는 21세기에 가장 적합한 모델이다. 지역과 업종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경쟁 상황에서는 사원들을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재로 길러내는 것이 어느 때보다 긴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영자들이여,조바심 내지 말고 맡기시라.부하들 몰래,그들이 스스로 결정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보시라.회사의 발전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역사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