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그룹 회장이 두문불출하며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작년 말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각종 모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지만,최근 그룹 유동성 문제 등 현안 해결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A그룹이 재무구조개선 약정 대상 기업으로 세간에 오르내리면서 걱정은 더 커졌다. 어떤 자산이나 계열사를 내놔야 금융권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가 최대 고민거리다.

잠재부실을 안고 있는 대기업들이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산업은행 등 금융권은 최근 '바이백(Buy back)' 옵션조건까지 제시하며 해당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바이백 옵션이란 특정기업을 인수하고 나중에 매각할 경우 우선매수청구권을 상대방에게 인정해주는 방식으로,피인수기업을 되살 수 있는 조건을 통해 자산 매각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조치다. 대기업들이 자산이나 계열사 매각을 마냥 미루며 무작정 버티기가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대기업 자산매각 '벼랑'으로

이미 일부 그룹은 자체적으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산 및 계열사 매각에 돌입했거나 검토에 들어갔다. 그동안 공격적인 M&A(인수 · 합병)로 인해 향후 재무구조가 다소 취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A그룹은 작년 말부터 금융계열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매각이 계속 연기돼 왔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A그룹이 유동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채권은행단과 협의를 거쳐 제조업 기반의 다른 계열사를 추가로 내놓을 것이라는 얘기마저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2007년 인수한 기업과 관련해 산은과 재무구조 약정 변경을 논의 중인 B그룹도 보유하고 있는 다른 기업 지분뿐 아니라 최근 분할한 일부 계열사를 매각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C그룹은 유휴자산 등을 매각,1조원 이상을 유동화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산은에 바이백 옵션형식으로 알짜 계열사를 매각키로 한 D그룹은 그룹 차원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 계열사 매각 방안을 들고 나올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작년 유통관련 기업을 인수한 E그룹 역시 최근 금융계열사 매각이 무산됨에 따라,다른 계열사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값 못 받고 꼭 팔아야 하나"

대기업들이 이처럼 앞다퉈 자산 및 계열사 매각 작업에 나선 것은 금융권을 포함한 시장에 자사의 재무구조 개선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B그룹 관계자는 "최근 은행장들이 기업들에 대놓고 '어떤 계열사를 매각해야 할 지 잘 취사선택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면 얘기가 다 끝난 것 아니냐"며 "자산 및 계열사 매각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자구노력을 보여줘야만 하는 상황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주도의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금융권이 들고 나온 바이백 옵션방식의 자산 매각 방법에는 동의하지만 재무구조개선 약정 대상 기업으로 선정된 기업들이 향후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거나 M&A에 지장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 약정 체결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권은행은 빠르면 이달 내로 45개 주채무계열 중 불합격 판정을 받은 그룹을 중심으로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할 예정이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