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재정적자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경기부양에 투입하면서 나라 빚이 급증하는 추세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 독일 호주 중국 등은 잇따라 과세 대상을 확대하고 일부 세율을 올리고 있다. 몇몇 국가에서는 부자들과 기업의 해외 투자 수익에 중과세 방침을 정하면서 당사자들이 강력 반발하는 등 정치적 이슈로까지 부상할 조짐이다.

◆미국 10년간 16조4800억달러 징수

백악관은 지난 2월 2010회계연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총 16조4800억달러의 소득세와 4조2150억달러의 법인세를 징수하는 내용을 담은 예산안을 내놨다. 특히 부유층에 대한 감세 혜택을 없애 총 6367억달러,기업 등에 대한 각종 세금을 강화하고 조세회피를 줄이는 방식으로 3534억달러의 세금을 더 걷기로 했다. 증세분으로는 서민층과 중소기업 지원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보험 상품 관련 과세를 늘리고 보험사가 주식시장에 투자했을 경우 받게 되는 보통주 배당금에 대한 세금공제 혜택도 제한할 예정이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올해 1조8400억달러,내년 1조2600억달러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 같은 증세 정책이 고소득층과 헤지펀드,보험업계 등 금융종사자,부동산 개발업체를 주 대상으로 삼으면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금융상품 거래자와 헤지펀드 매니저,생명보험 종사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게 불가피하다"며 "사모펀드 임원의 경우에는 세금이 3배가량 늘어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다국적 기업과 부유층,보험 · 증권업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미 보험업계는 "생명보험 상품 판매에 종사하고 있는 7500만명의 생계를 위협하는 조치"라고 비판했고,로비스트 종사자들은 "데마고그(대중 선동가)가 되긴 쉽다"며 원색적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섰다. 공화당의 찰스 그래슬리 상원의원은 "이번 증세안은 일자리를 없애기 위한 계획"이라고 비꼬았다.

◆부가세 인상,연금 소득공제도 폐지

유럽 주요국들도 천문학적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방법으로 증세를 선택했다. 1750억파운드(약 350조원)라는 사상 최대 재정적자를 보이고 있는 영국은 지난주 세금 인상 방안을 밝혔다. 내년부터 연소득 15만파운드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현행 40%에서 50%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당초 2011년부터 45%로 인상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인상폭이 커지고 적용 시기도 앞당겨졌다. 또 이들 고소득층에는 2011년 4월부터 개인연금 불입액에 대한 소득공제율도 줄어들고 소득세 공제 항목이 단계적으로 없어진다. 영국 정부는 또 23일부터 주류세와 담뱃세를 2%씩 인상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영국 언론들은 고든 브라운 총리를 레닌에 비유하거나 '계급투쟁' 같은 선동적 언어를 사용하며 부유층의 반발을 전하고 있다. 영국 기업들은 경쟁력 하락을 우려하고 나섰고,금융업계는 우수 인재 유출을 걱정하고 있다.

중국도 세수 증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반관영 통신인 중국신문사는 국가세무총국이 올해 개인 및 기업소득세,소비세,부가가치세,소비세,재산세 등의 탈세를 방지하고 엄격히 징수해 적정 수준의 세수를 확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법인세 관리를 철저히 하기로 했다.

헝가리 의회는 11일 올 하반기부터 부가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2009회계연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독일도 볼프강 쇼이블레 내무장관이 "경기부양책 등으로 세금 부담을 경감해줄 여지가 없다"며 세금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섰다. 그리스 정부도 지난해 국내총생산의 5.0%에 달한 재정적자를 올해 3.7%로 낮춘다는 목표 아래 연소득 6만유로 이상의 소득층을 대상으로 일회성 세금 인상을 추진 중이다. 이 밖에 호주 정부도 11일 연금수령 연령을 높이고 고연봉 은퇴자에 대해 세금을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 예산안을 내놨다.

김동욱 기자/워싱턴=김홍열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