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

그윽한 범종 소리가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실(국회의사당 239호)에 울려 퍼진다. "용주사(경기도 화성) 주지 스님이 '종소리를 듣는 순간만이라도 번뇌로부터 벗어나시라'는 의미에서 작은 범종을 선물해 줬다"고 한다.

임 의장은 1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 앞서 늘 바쁘게 사는 기자들도 마음의 정화를 얻으라고 '타종'부터 했다.

오는 29일 정책위 의장 임기가 끝나는 임 의장은 이 방을 비워 줘야 한다. 한 달여 더 의장직을 수행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한나라당사 5층 사무총장실로 '입성(入城)'하게 될 수도 있다. 그는 "정책위 의장을 다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참여정부의 '대못'을 뽑고 'MB노믹스'를 안착시키는 데 임 의장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당 · 정 · 청 가릴 것 없이 여권의 공통된 평가다. 임 의장은 "지난 1년간 공개 · 비공개 합쳐 당정 회의를 가진 횟수가 400회를 넘는다"고 했다. 쉬는 날 빼면 하루 평균 두세 번씩 당정 회의를 열었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그는 어떻게 보면 명실상부 실세 정책위 의장으로 '폼나게' 살았다. "물 위에서만 보면 그렇겠죠.백조가 우아한 자태로 떠 있기 위해서는 물밑에서 끝없이 발버둥쳐야 하는데…."임 의장이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임 의장을 가장 많이 괴롭힌 것은 경제 개혁 입법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내용보다는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당 지도부 및 중진들과의 껄끄러운 관계였다. "당정협의 내용을 미리 알려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가 이런 걸 신문 보고 알아야 되느냐'며 역정을 내는 분도 있었다"고 전했다. 막상 내용을 미리 알려 줬더니 언론에 흘러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책의 실용성이나 합리성을 중시하는 대통령과 정치적 명분과 형식,절차를 따지는 당 지도부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그나마 정책위 내에서만큼은 한나라당의 고질적 병폐인 계파 갈등이 없었던 게 힘이 됐다. 임 의장은 "정책위만큼은 계파 싸움의 '무풍 지대'였다"며 "정조위원장 라인업은 친이 · 친박계 섞어서 짰는데 어느 한 사람도 계파별 이해관계 같은 걸 앞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한나라당 내 정책통 의원들의 주가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임 의장은 원내대표 경선 준비 과정에서 러닝메이트인 정책위 의장 자리뿐만 아니라 원내대표 사무총장 등에 두루 거론된다. 재선인 최경환 수석 정조위원장의 이름도 여기저기에 오르락내리락한다.

임 의장은 그러나 "아직은 정책 전문가가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책 라인은 관료 출신들이나 하는 것처럼 여기는 풍토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임 의장은 "계파 관리를 잘하는 이른바 '정치꾼'보다는 정책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조정 능력을 가진 정치인이 당 내에서 우대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정치 문화를 선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임 의장은 마지막 작품으로 소외된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날도 인터뷰를 마치고 곧장 경기 성남에 위치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임 의장은 "현장의 요구가 느껴지고,손에 잡힐 듯 알기 쉽고,셈이 가능한 정책을 내놔야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며 "한나라당도 당장 계파 갈등을 봉합하는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대선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이들이 뭘 원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기현/이준혁/구동회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