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14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와 관련해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다음 주에 불러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브리핑에서 "이번 주까지 기초 조사를 충분히 해 놓은 만큼 다음 주부터 (관련자 소환 등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미국 뉴저지주 주택 구입 계약금으로 지불했다는 45만달러의 계약서 사본을 확보하기 위해 거래를 중개한 미국 현지 부동산업자와 협의 중이다.


◆한상률 천신일 소환

검찰에 따르면 천 회장은 작년 7~11월 국세청이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할 때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에게 세무조사를 중단해 달라고 청탁하고 박 전 회장으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얻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천 회장이 인수합병을 통해 세중나모여행사 등 14개사의 최대주주가 되는 과정에서의 자금 이동과 주식거래 내역 등에 대한 분석을 거의 마쳤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천 회장이 주식을 차명 보유할 수 있도록 명의를 빌려준 지인 15명으로부터 박 전 회장이 자금을 지원했다는 진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 회장은 또 자녀들에게 주식을 편법 증여하면서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천 회장 조사에 앞서 한 전 청장을 조사하기로 하고 귀국을 종용하고 있으나 한 전 청장은 귀국을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기획관은 "한 전 청장이 자신에게 여론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전 청장은 이와는 별도로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인사청탁을 목적으로 그림을 건넸다는 의혹으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선상에도 올라 있어 귀국하면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조사를 동시에 받아야 할 형편이다.

검찰은 또 지난 13일 작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소속으로 세무조사에 참여했던 서울 모 지역 세무서장을 불러 세무조사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는지를 조사했으며 이날 김정복 전 국가보훈처장을 다시 불러 세무조사 무마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추궁했다. 검찰은 천 회장과 김 전 처장이 여러 차례 통화하면서 한 전 청장이나 제 3의 인물에게 실제로 청탁을 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측 증거 인멸 의혹

검찰은 100만달러를 포함해 정연씨 등에게 따로 건네진 20만달러와 추가로 밝힌 40만달러가 모두 주택 구입에 사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홍 기획관은 "아직은 정연씨가 45만달러를 계약금으로 지불했다는 사실만 인정하고 있다"며 "전체 거래금액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계약서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 측의 추가 금품 수수와 진술 번복,증거 인멸 정황이 드러나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정연씨는 40만달러를 송금받아 계약한 미국 아파트의 계약서를 찢었고, 권양숙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의 회갑선물로 받은 억대 명품시계를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친족이 증거를 없앤 것은 증거 인멸 예외 규정에 해당되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 측이 증거 인멸을 했는지 여부는 다시 판단할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이미 증거 인멸 의혹은 커진 상황이다. 증거 인멸은 주거 부정,도주 우려 등과 함께 주요 구속 사유가 된다. 노 전 대통령 측이 600만달러와 3억원에 대해 진술을 여러차례 뒤집고 40만달러에 대해서도 진술을 번복한 것은 혐의를 짙게 하는 대목이다. 판사 출신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판사가 아닌 일반인이 보더라도 의심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