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증시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주가연계증권(ELS) 수익률 조작이 처음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매년 20조원 안팎의 투자자금이 몰리는 인기 상품의 수익률을 외국 운용회사가 조작한 것이어서 큰 파장이 우려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14일 "최근 주가 상승으로 ELS 판매가 5개월 연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 상당한 영향이 우려된다"며 "주가 조작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거래소 주가 조작 감리 착수

한화증권은 지난해 4월22일 포스코와 SK㈜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스마트ELS 10호'를 개인투자자들에게 모두 68억원어치 팔았다. 1년 만기일인 올 4월22일에 포스코와 SK의 주가가 최초 기준가(2008년 4월22일 주가)의 75% 이상일 경우 연 22.0%의 고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이에 따라 만기일인 지난달 22일 많은 투자자의 관심이 SK 주가 움직임에 쏠렸다. 포스코는 기준가의 80% 수준에서 유지돼 여유가 있었지만 SK 주가는 76~77% 선으로 아슬아슬한 마지노선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22%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선 SK 종가가 11만9600원 이상으로 마감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장중 주가는 12만원대에서 움직여 무난하게 확정수익률 조건을 충족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장 마감을 앞둔 10분간의 동시호가에서 이날 거래량의 40%를 웃도는 13만주의 매물이 대거 출회돼 종가는 1.65% 하락 반전해 기준가의 74.6%인 11만9000원으로 끝났다. 22%가 기대됐던 투자자들의 수익이 불과 600원 차이로 오히려 -25.4%로 추락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ELS의 헤지를 담당했던 캐나다의 한 대형 은행이 매도 주문을 낸 것으로 확인된 점이다. 이 회사는 동시호가에 낮은 가격으로 '팔자' 주문을 내 주가를 2000원가량 하락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시호가 때는 미리 주문을 받은 뒤 평균가격으로 매매를 체결시키는 점을 악용해 주가를 고의로 떨어뜨린 것이다.

거래소는 10여일간에 걸친 감리를 통해 이 같은 혐의를 거의 확인하고 다음 달 초 결론을 낼 예정이다. 이 ELS 투자자들은 원금의 74.6%에 해당하는 투자자금을 돌려받은 상태지만 조사 결과에 따라 소송 등을 통한 손실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한 전문가는 "ELS의 헤지를 담당하는 금융회사는 이를 다시 파생상품을 통해 헤지하고 수수료 수입만 얻는 게 일반적이지만 금융위기가 한창이어서인지 미처 헤지하지 못해 주가 조작에 나선 것 같다"고 진단했다.

◆금융위기로 추가 조작 개연성

ELS는 최근 몇 년 동안 주식시장의 성장과 함께 인기가 급상승한 상품이다. 2007년 25조6000억원,2008년 20조6000억원이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시가 급락, 판매가 주춤했지만 최근 다시 5개월 연속 증가하는 등 인기를 회복하고 있는 추세다. 올 1분기에 1조1000억원어치가 팔린 데 이어 4월에도 판매액이 6647억원에 달했다.

ELS 상품은 대부분 외국 금융회사가 개발 · 설계한다. 국내 증권사나 은행은 파생상품에 익숙하지 못해 외국 회사들이 만든 ELS를 들여와 단순 판매하는 실정이다.

또 ELS 수익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상품을 설계한 외국 금융회사에 다시 헤지를 맡기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 '백 투 백 헤지'라고 부른다. 전체 ELS의 70% 정도가 이 방식을 채용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중호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외국 금융업체가 상품 설계와 헤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주가 조작에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거래소 관계자도 "보통 지수를 대상으로 ELS를 설계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종목 ELS가 많아 주가 조작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내달 초쯤 정확한 거래소 조사 결과가 나오면 주가 조작을 방지할 수 있는 개선책도 함께 찾아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만기일 전 5일 정도의 주가를 평균하는 등의 보완책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