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기자

비만

살이 쪘다는 것과 능력은 별개 문제다.

각국의 역사에 가히 전환기적이라고 할만한 변화를 가져온 인물들 중에도 의외로 ‘푸짐한’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연히도 조선의 정도전, 일본의 도쿠카와 이에야스, 영국의 헨리8세는 최소 수백년간 각국의 역사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큰 역할을 한 인물들임과 동시에 ‘복부비만’이었던 점도 공통점으로 지닌 인물들이었다.


일본 전국시대의 막을 내리고 도쿠카와 막부 정치의 서막을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몸이 비대했다. 단지 비대했던 정도가 아니라 스모 선수에 비견될 만했다는 것. 매력적인 전기작가 프랭크 맥린은 “비싼 비단옷을 걸친 이에야스는 번지르르한 이동천막 처럼 보였다”라고 평하고 있는데.소문에 의하면 그는 허리띠로 옷을 여밀 수 없을 정도로 뚱뚱했고 인생 후반부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말에 올라탈 수도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사소한 자극에도 반응을 보여,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손톱을 씹었다고 하니 그다지 ‘간지’나는 모습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이 치른 90여차례 전투에서 손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안장의 앞부분을 두들기는 버릇도 있어 결국 손가락 관절이 비틀려 기형이 됐고 늙어서는 손이 뻣뻣해져 구부릴 수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최근 영국에서 갖가지 즉위 5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헨리8세는 수많은 얘깃거리를 제공하는 사생활로 유명한 대표적인 비만국왕이었다.

여섯 차례 결혼하고, 두명의 왕비를 사형시켰으며 첫 부인과 이혼하기 위해 카톨릭을 버리고 영국 국교회를 만든 헨리8세는 본인이 계획하거나 의지를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유럽대륙과 분리된 영국’이라는 영국사 방향의 큰 획을 결정지은 인물. 근대국가로서 영국의 특징은 헨리8세가 초석을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역사가에 의해 "멋지고,당당하고,낭비가 심하고,호색적이고,시기심 많고,게으르고,교활하고,탐욕스럽고,허영심에 가득찬" 사람으로 묘사된 헨리8세는 묘사에서 연상되듯 연륜이 쌓일수록 넉넉한 풍체를 갖춰갔다.
AP통신에 따르면 헨리8세가 착용했던 갑옷들을 살펴보면 젊었을 때는 혈기왕성한 카리스마 넘치는 날씬한 체형이었지만 갈수록 홀바인의 유명한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덩치’하는 모습으로 변해가 특수제작된 갑옷만을 입을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왕조를 개창하고 이후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의 큰 틀을 짠 정도전은 한국사에서 드물게 ‘복부비만’이었음이 전해지는 인물. 그가 복부비만이었음이 전해지는 기록도 드라마틱하다. 바로 그의 풍체를 전하는 기록(“배가 불룩한 사람”)이 그 의 비명횡사와 관련됐기 때문이다.

정도전의 외조모는 승려 김전이 그의 노비인 수이의 처와 간통해 낳은 자식이었고, 정도전의 처 최씨 역시 적자가 아니라 장인이 첩에게서 얻은 자식이었다. 양쪽 부모중 한쪽이라도 천인이면 천인취급을 받던 전통시대에 최악의 신분굴레를 지니고 살았던 인물인 셈.

이런 컴플렉스를 떨치기 위해 정도전은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주도하며 조선왕조의 설계자 자리에 오른다. 태조 이성계로부터 “내가 이 자리에 오른것은 그대 덕이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공했지만 커져가는 그의 권력은 종친세력과 무장세력의 견제를 가져왔다.

결국 정도전을 견제하던 태조의 아들이자 정적인 이방원은 ‘제1차 왕자의 난’ 을 일으킨 직후 거사를 성공하는 지름길이 정도전을 죽이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에 정도전을 습격해 죽이려 하지만 정도전은 구사일생으로 달아나게 된다. 그러나 전 판서인 민부의 고변으로 그의 집에 숨어있던 정도전은 체포되는데.

이 장면을 조선왕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전한다.

"정도전 등은 모두 도망하여 숨었으나 심효생·이근·장지화 등은 모두 살해를 당했다.도전이 도망하여 그 이웃의 전 판사(判事) 민부(閔富)의 집으로 들어가니,민부가 아뢰었다. “배가 불룩한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습니다.”

정안군은 그 사람이 도전인 줄을 알고 이에 소근 등 4인을 시켜 잡게 하였더니 도전이 침실 안에 숨어 있는지라. 소근 등이 그를 꾸짖어 밖으로 나오게 하니 도전이 자그만한 칼을 가지고 걸음을 걷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나왔다. 소근 등이 꾸짖어 칼을 버리게 하니, 도전이 칼을 던지고 문 밖에 나와서 말하였다.

“청하건대 죽이지 마시오. 한마디 말하고 죽겠습니다.” 소근 등이 끌어내어 정안군의 말 앞으로 가니,도전이 말했다.

“예전에 공(公)이 이미 나를 살렸으니 지금도 또한 살려 주소서.”

그러자 정안군이 말했다.“네가 조선의 봉화백(奉化伯)이 되었는데도 도리어 부족(不足)하게 여기느냐? 어떻게 악한 짓을 한 것이 이 지경에 이를 수 있느냐?” 이에 그를 목 베게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태조 7년(1398) 8월 26일 기사中>

아마 정도전이 복부 비만이 아니어서 전통시대에 보기 드문 ‘배가 불룩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마 삶을 더 유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도전이 나라를 세우고, 기초를 닦는 큰 일을 하는데 있어 배가 나온 것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헨리8세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그들의 업무에 있어 비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될 듯 하다.

나날이 튀어나오는 배를 바라보며 역사책속에서 이런 저런 변명거리를 찾아봤다.

<참고한 책>

프랭크 맥린, 전사들, 김병화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8
박지향, 영국사-보수와 개혁의 드라마, 까치 1997
이성무, 조선왕조사1-건국에서 현종까지, 동방미디어 2003

☞ [김동욱 기자의 역사책 읽기] 복부비만 3총사, 정도전·도쿠가와 이에야스·헨리8세의 성대한 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