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은 개인에겐 미덕일지 모르지만 국가경제에는 독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소비가 미덕인 시대다. "(뉴스위크)

'절약의 역설'…알뜰소비가 美경제 회복 발목
미국인들의 소비행태 변화로 소매판매 위축 현상이 이어지면서 경기 회복 기대감 확산에 제동이 걸렸다. 소비자들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서 내수가 줄고,경제활동이 저하되는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에 미국 경제가 빠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케인스가 제기한 '절약의 역설'은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오히려 내수 위축과 경제활동 저하를 초래해 경제를 총체적 불황으로 몰고 갈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지난 13일 미 상무부는 4월 소매판매 실적이 0.4% 감소했다고 밝혔다. 3월(1.3% 감소)에 이어 두 달 연속 시장 예상치를 밑돈 것이다. 또 시장조사업체인 쇼퍼스케이프서베이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80%의 여성이 의류 신발 액세서리의 구매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가 제품은 쳐다보지 않고 철저히 파격 세일 상품 위주로 쇼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조사 대상자의 30%가량은 경기가 회복돼도 가격이 높은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울렛 등 할인매장을 주로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리테일포워드의 켈리 태켓 선임 컨설턴트는 "소매업체들은 경기가 살아나도 소비자들의 이 같은 신중한 구매 관행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마케팅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가 여성의류 브랜드를 판매하는 리즈클레이본은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해 9140만달러의 손실을 냈다.

경기 회복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것은 실업률 증가와 자산가치 하락으로 미 소비자들이 닫힌 지갑을 열지 않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에 덴 소비자들이 과잉소비 대신 절약을 미덕으로 삼는 패턴으로 돌아선 것도 한 요인이다. 4월 미국 실업률은 8.9%로 1983년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지난해 주택 및 주가 하락에 따른 미국 가계의 순자산 손실 규모는 11조200억달러에 달했다.

미국인들은 자산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소비를 줄이는 대신 저축을 늘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평균 1.7%였고 2005년에는 마이너스로 떨어지기까지 했던 저축률은 최근 14년래 최고치인 5%로 치솟았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개인 저축률이 6~10%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놨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수년 내 미국 저축률이 7~8%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조너선 파커 노스웨스턴대 경영학과 교수는 "올해 말 저축률이 경기침체가 시작됐던 2007년 말보다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절약이 미덕'이라는 사고가 미국인들을 계속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소비가 미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라는 점에 비춰보면 저축률 증가는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인의 절약은 세계 수요도 줄여 세계경제에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