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드] 대기업 구조조정 줄다리기 ‥ 정부 "다 살리려다 다 죽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재계 "큰 문제 없는데 왜"
정부, 계속 고강도 압박‥경제 긍정신호 나온다고 수술대 피하면 시장이 응징
계열사 매각 압박하자 "부채비율 높지 않은데 부실기업 낙인" 반발
정부, 계속 고강도 압박‥경제 긍정신호 나온다고 수술대 피하면 시장이 응징
계열사 매각 압박하자 "부채비율 높지 않은데 부실기업 낙인" 반발
은행권 대출이 많은 45개 주채무계열(대기업그룹)에 대한 재무평가가 지난달 말 끝났다.
금융감독원은 불합격 판정을 받은 그룹 위주로 주채권은행이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더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해당 기업들의 반발에 밀려 구조조정 계획을 짜지 못하고 있다.
재무평가가 끝난 지 2주가 지났는데도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대상 기업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위기발생 '우려'로 구조조정 추진
지난해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던 주채무계열이 올 들어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기업 부실이 현실화될 수 있고,이로 인해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10여년 전의 외환위기와는 달리 기업들의 연쇄부도 사태가 당장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국내 경제도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은행이 대기업에 구조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는 금융감독원의 은행감독업무 규정에 있다. 금융회사 신용공여 잔액이 전체의 0.1% 이상인 계열기업군을 선정(79조)하고 주채권은행은 담당 주채무계열의 여신상황을 포함한 기업정보를 종합적으로 관리(제82조)하도록 명시돼 있다.
또 '주채무계열 재무구조개선 운영준칙'에 따라 각 은행은 매년 4월 말까지 주채무계열에 대해 부채비율과 채무상환능력,수익성을 중심으로 재무평가를 실시한 뒤 불합격 계열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이행실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규정돼 있다.
지난달 말 재무평가에서 불합격판정을 받은 곳은 45개 주채무계열 중 14곳이다. 이 중 약정체결 대상으로 꼽히는 그룹은 금호 동부 한진 동양 애경 웅진 유진 대한전선 GM대우 등 10곳 안팎이다.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총자산회전율,영업이익률 등 재무지표와 향후 현금흐름 등을 종합해서 평가한 결과다.
◆기업 "왜 하필 내가…"
하지만 해당 대기업들은 "왜 나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낙인찍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아직 큰 문제가 없는데도 굳이 부실기업 딱지를 붙여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예컨대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지난해 말 부채비율은 169%,웅진은 137%,한진 동양도 240%로 당장 위험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약정 체결대상으로 결정될 경우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그룹 전체의 신용도가 떨어지고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를 부채질해 멀쩡한 기업도 쓰러질 수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기업들이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꺼리는 또 다른 이유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금조달 계획과 매각대상 자산 및 계열사를 확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매달 이행실적을 점검받아야 해 사실상 은행관리체제에 들어가게 되고 자율경영이 어려워진다.
약정에 따라 과거에 높은 가격을 주고 인수한 기업을 현재 시장가격에 따라 헐값에 내놔야 하는 점도 불만이다. 경기가 회복될 경우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기업을 헐값에 뺏기게 된다는 것이다.
금호 유진 대한전선 등 약정체결 대상기업 중 상당수가 과거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운 그룹이라는 점에서 공통의 고민을 안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입장에서는 약정을 맺는 순간 과거 인수합병의 실패를 자인하게 되는 셈"이라며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당국 "그룹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
대기업의 버티기 전략에 금융당국은 '그룹 해체'까지 언급하며 경고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최근의 일부 긍정적인 신호를 낙관적으로 해석해 구조조정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며 "기업 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니고 우리 경제가 향후 '죽느냐 사느냐'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창 금감원장도 전날 "모두 건지려고 하다가 전부를 잃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아까운 기업부터 먼저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지난 9일 기자간담회를 자청,"시장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경우 결국 시장의 응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한 발 더 나아가 "마취주사까지 맞은 기업들이 수술대에는 안 올라갈려고 한다"며 "구조조정을 소홀히 하려는 기업에 대해 은행들은 다양한 강요수단을 갖고 있다"고 회초리를 들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경우 신규 여신 중단은 물론 만기연장 거부,담보권 행사를 통한 여신회수 등의 제재조치를 가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부채보다는 이익 위주 구조조정 필요
전문가들은 부채비율 위주로 기업들을 구조조정했던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현금흐름을 개선하고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사업구조개편 방식의 구조조정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다.
차입금이 다소 많더라도 금융비용을 상회할 정도의 이익이 나오고 향후 사업전망도 밝다면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공급과잉으로 시장과열이 우려되고 영업전망이 불투명한 경우에는 단계적으로 사업비중을 축소하고 관련 기업을 매각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대표는 "부채비율 자체보다는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인 이자보상배율이 더 중요하다"며 "기업들이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경쟁력있는 사업구조를 갖출 수 있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입금 규모가 작더라도 우발성 채무로 인한 잠재적 부실 가능성이 큰 경우에는 선제적인 자산매각을 유도,상황 악화에 대비토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정부가 할 일은 재무적 구조조정보다 각 기업이 가진 사업구조를 한국 경제의 전체 틀 속에서 자발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사업구조가 방만한 기업들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심기/김현석 기자 sglee@hankyung.com
금융감독원은 불합격 판정을 받은 그룹 위주로 주채권은행이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더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해당 기업들의 반발에 밀려 구조조정 계획을 짜지 못하고 있다.
재무평가가 끝난 지 2주가 지났는데도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대상 기업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위기발생 '우려'로 구조조정 추진
지난해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던 주채무계열이 올 들어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기업 부실이 현실화될 수 있고,이로 인해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10여년 전의 외환위기와는 달리 기업들의 연쇄부도 사태가 당장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국내 경제도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은행이 대기업에 구조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는 금융감독원의 은행감독업무 규정에 있다. 금융회사 신용공여 잔액이 전체의 0.1% 이상인 계열기업군을 선정(79조)하고 주채권은행은 담당 주채무계열의 여신상황을 포함한 기업정보를 종합적으로 관리(제82조)하도록 명시돼 있다.
또 '주채무계열 재무구조개선 운영준칙'에 따라 각 은행은 매년 4월 말까지 주채무계열에 대해 부채비율과 채무상환능력,수익성을 중심으로 재무평가를 실시한 뒤 불합격 계열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이행실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규정돼 있다.
지난달 말 재무평가에서 불합격판정을 받은 곳은 45개 주채무계열 중 14곳이다. 이 중 약정체결 대상으로 꼽히는 그룹은 금호 동부 한진 동양 애경 웅진 유진 대한전선 GM대우 등 10곳 안팎이다.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총자산회전율,영업이익률 등 재무지표와 향후 현금흐름 등을 종합해서 평가한 결과다.
◆기업 "왜 하필 내가…"
하지만 해당 대기업들은 "왜 나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낙인찍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아직 큰 문제가 없는데도 굳이 부실기업 딱지를 붙여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예컨대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지난해 말 부채비율은 169%,웅진은 137%,한진 동양도 240%로 당장 위험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약정 체결대상으로 결정될 경우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그룹 전체의 신용도가 떨어지고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를 부채질해 멀쩡한 기업도 쓰러질 수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기업들이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꺼리는 또 다른 이유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금조달 계획과 매각대상 자산 및 계열사를 확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매달 이행실적을 점검받아야 해 사실상 은행관리체제에 들어가게 되고 자율경영이 어려워진다.
약정에 따라 과거에 높은 가격을 주고 인수한 기업을 현재 시장가격에 따라 헐값에 내놔야 하는 점도 불만이다. 경기가 회복될 경우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기업을 헐값에 뺏기게 된다는 것이다.
금호 유진 대한전선 등 약정체결 대상기업 중 상당수가 과거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운 그룹이라는 점에서 공통의 고민을 안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입장에서는 약정을 맺는 순간 과거 인수합병의 실패를 자인하게 되는 셈"이라며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당국 "그룹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
대기업의 버티기 전략에 금융당국은 '그룹 해체'까지 언급하며 경고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최근의 일부 긍정적인 신호를 낙관적으로 해석해 구조조정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며 "기업 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니고 우리 경제가 향후 '죽느냐 사느냐'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창 금감원장도 전날 "모두 건지려고 하다가 전부를 잃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아까운 기업부터 먼저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지난 9일 기자간담회를 자청,"시장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경우 결국 시장의 응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한 발 더 나아가 "마취주사까지 맞은 기업들이 수술대에는 안 올라갈려고 한다"며 "구조조정을 소홀히 하려는 기업에 대해 은행들은 다양한 강요수단을 갖고 있다"고 회초리를 들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경우 신규 여신 중단은 물론 만기연장 거부,담보권 행사를 통한 여신회수 등의 제재조치를 가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부채보다는 이익 위주 구조조정 필요
전문가들은 부채비율 위주로 기업들을 구조조정했던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현금흐름을 개선하고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사업구조개편 방식의 구조조정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다.
차입금이 다소 많더라도 금융비용을 상회할 정도의 이익이 나오고 향후 사업전망도 밝다면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공급과잉으로 시장과열이 우려되고 영업전망이 불투명한 경우에는 단계적으로 사업비중을 축소하고 관련 기업을 매각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대표는 "부채비율 자체보다는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인 이자보상배율이 더 중요하다"며 "기업들이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경쟁력있는 사업구조를 갖출 수 있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입금 규모가 작더라도 우발성 채무로 인한 잠재적 부실 가능성이 큰 경우에는 선제적인 자산매각을 유도,상황 악화에 대비토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정부가 할 일은 재무적 구조조정보다 각 기업이 가진 사업구조를 한국 경제의 전체 틀 속에서 자발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사업구조가 방만한 기업들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심기/김현석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