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들은 못났지.잘하는 것이 없으니 못난 거지.모든 면에서 능력이 딸려.문학하는 이들 중 그런 사람이 많은 것 같아.지금이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살지."

"문인끼리 원고료 털어 술 마시던 情이 날 키워"
<농무>의 시인 신경림씨(74)는 시 <파장>에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이라고 노래했다. 이 시의 한 구절을 따서 제목을 지은 에세이집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문학의문학)에서 그는 어린 시절과 1960~1970년대 문인들과 어울리며 생긴 일들을 털어놓았다.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씨는 "나는 허풍이 세고 큰소리치는 아이였다"면서 "내가 글을 잘쓰는 척을 하니 다들 그런 줄 알았는데,사실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도 못해봤고 대회에 나가서 글을 제출하지 않고 돌아왔다가 혼난 적도 있었다"고 자신의 유년기를 회고했다. 어린 시절 신씨가 다니던 학교에서 작문 입상자가 나왔다는 소문이 나자,모두 그가 수상자이려니 생각해 '마을의 영웅'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입상자가 다른 친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다음 날부터 뒷길로만 다니고 학교도 뒷문으로 드나들었던'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서정주,천상병,조태일,이문구,한남철 작가 등과의 인연과 정이 넘치던 문단 풍경도 소개했다. 김관식 시인의 서재에서 값나갈 만한 책을 훔쳐 팔아 술값을 하려 할 만큼 술을 좋아했던 천상병 시인은 신씨에게 안주라고는 단무지뿐인 좁쌀술을 사면서 "이눔아 취직,니 책임지는 기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물론 신씨는 그의 알선에 따른 취직은 포기한 상태였다.

덩치가 우람한 조태일 시인과 체구가 작은 신씨가 함께 구속돼 종로경찰서로 넘어오면서 같이 수갑을 찼을 때,형사들이 "이거,고목에 매미가 붙은 거여,코끼리하고 생쥐가 한 끄나풀에 묶인 거여!"라고 한마디씩 했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신씨는 "아무래도 그때 나를 '문화계 비례대표' 격으로 붙잡아갔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씨는 "당시에는 누가 원고료 받는 날이다 하면 그걸 털어 술을 먹느라 문인들끼리 돈독했었다"면서 "전화가 집에 있는 사람이 열 명에 하나 있는 데다 원고료를 직접 나와서 받아야 했던 시절이라 다들 다방에 모이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문인들과 어울렸던 이런 시절이 시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덧붙였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