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를 경험한 국내 소비자들은 불황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연령,소득,직업,성별 등에 따라 다양한 대처 방식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제 일 기 획 은 지난 3~4월 서울 · 수도권 거주 20~49세 남녀 660명을 조사한 '2009 불황기 소비자 유형 보고서'에서 국내 소비자를 △불황 주시형 △불황 동조형 △불황 복종형 △불황 자존형 △불황 무시형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유형별 마케팅 전략을 제시했다. 박경연 제일기획 커뮤니케이션연구소 국장은 "전체 응답자의 98%가 현재 경기불황이 심각하다고 답했지만 그 대응 방식은 '절약이 애국이다'는 식의 IMF 위기 때와는 달랐다"며 "구매 시기를 재조정하거나 정보 탐색에 보다 신중해지는 등 과거의 '불황 학습 효과'로 인해 내공이 쌓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불황 주시형

"불황이라고 해서 갑자기 다 안 쓸 수 있나요? IMF 때도 오래갈 줄 알았는데 결국 나아졌잖아요. 일단 어떻게 될지 지켜 봐야죠."40대 사무직에 종사하는 월소득 500만원 이상의 고소득 기혼 남성이 이 케이스에 속한다. "경기가 어려워도 미래를 위한 소비는 포기할 수 없다"며 자녀 학원비와 통신비 등은 그대로 유지하지만,외식과 레저 등의 여가 생활 비용은 줄였다. 가전제품,자동차 등은 구매를 연기하거나 포기했다.

◆불황 동조형

"솔직히 지갑이 얇아져서라기보다 불확실하니까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야죠.장보러 가면 전처럼 많이는 못사겠어요. " 중간 소득층의 전업주부가 대표적 불황 동조형이다. 보험이나 통신서비스는 그대로 두지만 자녀 교육과 식료품 등 소비재는 지출 규모를 줄였다. 이들은 자신의 주관을 내세우기보다 대세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며 안전한 선택을 선호한다. 주변에서 많이 사용하는 브랜드를 구입해야 안심이 된다는 응답이 많았다.

◆불황 복종형

"요즘 장사가 안돼 온몸으로 불황을 느끼고 있어요. 통신비,학원비 가리지 않고 일단 줄이고 포기해야죠."

40대 남성 자영업자들이 이 부류다. 현재 불황을 가장 심각하게 느껴 소비 패턴을 바꾼 유형이다. 부채 보유율이 높은 저소득층이 많았다. 보험을 제외하고 자녀 교육비까지 줄였으며 "경기가 어렵다면 삶의 질을 포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불황 자존형

"휴대폰 요금과 화장품 구입비는 못 줄이겠어요. 불황이라고 마음에 안 드는 브랜드를 사고 싶진 않아요. "20대 초반 여대생들이 대표적이다. '나'를 중시하는 이들은 자신을 꾸미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소비는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실질 소득은 낮은 편이지만 경기가 어려워도 모르는 회사 제품은 사지 않는다.

◆불황 무시형

"불황이라고 남들 신경쓸 필요가 있나요?오히려 원래 쓰던 대로 해야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텐데…."

월소득 500만원 이상의 30대 중반 전문직 미혼 여성,즉 '골드미스'는 불황 무풍지대에 산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쇼핑,여행 등 여가활동도 그대로 유지한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