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세계경제가 L자형 장기침체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한국경제TV가 창사 10주년을 맞아 오늘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개최하는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크루그먼이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세계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상황을 재현할 수 있다고 전망한 것이다. 해외의존도가 어느 나라보다 높은 우리로서는 특히 유의해서 듣지 않으면 안될 대목이다.

크루그먼은 이번 금융위기를 자본주의 위기로 해석하는데는 동의하지 않지만 보다 강력하고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미국 등이 취한 조치는 어디까지나 충격을 줄이는 데 유효할 뿐 완전한 경제회복을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면서 금융시장에 대한 확실한 대응을 주문했다.

이는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낙관론을 경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금융시장을 살리기 위한 담대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한 것은 사태를 안이하게 보고 대응하다가는 또다시 금융불안이 도래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무엇보다 그는 세계경제가 L자형의 장기침체로 간다면 한국 등 수출주도형 국가들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지금 국내에서는 주식, 외환 등 금융시장이 안정기미를 보이자 경기바닥론이 힘을 얻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구조조정 속도조절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낙관(樂觀)하기엔 이르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국내 금융시장이 언제 또다시 불안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된다. 특히 세계경제가 장기침체로 간다면 우리로서는 새로운 성장전략을 모색해야만 한다. 수출 다변화와 함께 내수에 적극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다.

크루그먼은 과거 한국 경제성장 모델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외환위기를 예고했던 적이 있다. 이번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촉발됐지만 구조적이고 세계적인 문제이다. 보다 치밀한 정책적 대응이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