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첫 정규 방송을 탄 26부작 TV 애니메이션 '일지매'가 시청률(TNS 기준) 1.4%를 기록했다.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지만 시청 사각지대인 평일 오후 4시에 방송된 애니메이션으로는 양호하다는 평가다.

이준기가 주연한 인기 드라마를 옮긴 이 작품은 유아용이 판치는 TV 애니메이션 중 드물게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의적 일지매의 활약상을 어린이들의 취향에 맞게 익살스런 표정과 과장된 몸짓으로 그려내 웃음을 이끌어낸다.

방송사인 SBS 측은 "권선징악이란 교훈적 요소와 함께 꿈과 희망을 제시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 '뽀롱뽀롱 뽀로로'의 성공 이후 '유아용'이 휩쓸고 있는 방송 애니메이션계에 타깃 연령을 초등학생 수준으로 높인 '어린이용'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일지매' 외에도 KBS2TV가 지난달부터 방송 중인 '롤링스타즈',오는 9월 국내 방송을 목표로 제작 중인 52부작 '마이 자이언트 프렌드'와 26부작 '블립' 등이 그것.이들은 "오늘은 ~를 배워볼까요"란 말로 교육을 강조하는 '뽀로로'류와 성인 드라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은 청소년과 어른까지 타깃을 확장할 수 있는 데다 캐릭터 상품 등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업계의 변신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롤링스타즈'는 독재자의 명령으로 지구에서 야구가 사라진 미래를 배경으로,전직 야구선수들(동물 캐릭터 포함)이 외계인 선수들과 승부를 펼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스포츠 애니메이션.다양한 성격의 인물을 통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확대할 수 있고,야구팀 내 선수들의 갈등과 화해 등을 통해 인격의 발달도 돕는다.

'마이 자이언트 프렌드'는 외계인과 지구인이 합세해 악당들을 물리치고 우주인들을 구해내는 모험담.외부 세계를 향한 열린 마음을 강조하는 이 작품은 어린이들을 '세계시민'으로 길러내는 데 유익한 콘텐츠란 평가다. 한국과 프랑스가 공동 투자해 지난달부터 프랑스 지상파 TV '프랑스3'에서 방송하고 있다. 한국과 캐나다가 북미 시장을 겨냥해 제작 중인 '블립'은 2080년께 미래를 배경으로 물총으로 전쟁하는 깡통 로봇들의 이야기다.

이들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볼거리를 앞세워 시청자 층을 어린이뿐 아니라 전 연령층으로 확대할 수 있는 게 장점.실제로 '롤링스타즈'와 '일지매' 등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대학생 시청자들의 호응이 뜨겁다. 특히 '롤링스타즈'는 커뮤니티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 내 한국 애니메이션 코너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시청률은 1% 안팎에 그친다. 방송사들이 시청률 취약시간대인 평일 오후 4~5시에 편성했기 때문.'롤링스타즈'의 박정우 감독은 "오후 6시에 방영한다면 시청률 6~7%는 자신한다"고 말했다.

판권과 캐릭터 상품 판매 전망도 밝다. 시청 연령층이 확대된 만큼 판권 수요가 늘고,주 타깃인 어린이들은 유아들에 비해 자기 욕구를 잘 표현하기 때문에 캐릭터 상품 매출도 늘 것이란 분석이다. 일본은 어린이들을 주 타깃으로 만든 가족용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상품 매출로 세계 최고 애니메이션 강국으로 우뚝 섰다.

배영철 한국콘텐츠진흥원 애니메이션 팀장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국내 제작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는 청신호"라며 "국산 애니메이션과 관련 제품을 수출하는 데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