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미국 산업의 아이콘인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의 처리 과정이 그렇다. 신속 파산 절차로 회생을 꾀하는 크라이슬러는 노조가 새 출발하는 회사의 지분 55%를 갖게 된다. 정부와 노조가 퇴직자 건강보험출연금 절반을 회사 주식으로 받기로 합의한 결과다.

이달 말이 자구안 마련 시한인 GM에도 비슷한 해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정부와 노조가 '뉴 GM'의 지분을 50%,39%씩 보유하게 된다. 노조와 정부가 주인인 회사가 탄생하는 셈이다.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기업 영역에 정부가 선수로 뛰어들어 재미를 본 사례는 거의 없다.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전쟁과 통화관리 말고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없다"(단절의 시대:age of discontinuity)고 지적한다.

특히 그는 기업 경영자로서 정부의 성적표는 동유럽 위성국가는 물론 영국의 국유화 기업에서도 형편없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미 정부는 1970년대 후반 파산한 7개의 북동부 철도회사를 통합해 재건시킨 사례가 있다.

법(지방철도재조직법)을 만들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을 정상화시킨 뒤 1987년 민영화했다. 1970년대 영국도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국유화했다가 이들 브랜드를 서둘러 외국업체에 넘겨준 적이 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국유화를 뛰어넘어 노조와 정부가 공동 경영하는 일종의 '복지회사'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이는 거대 기업을 마치 구멍가게처럼 운영하겠다는 뜻과 같다. '주인(사)'과 '직원(노)'이 같아서 노사 갈등이 줄어들 수 있지만 형편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회사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군웅이 피를 흘리며 자웅을 겨루는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그런 회사가 과연 생존할 수 있겠는가.

GM이 파산 위기에 몰린 가장 큰 이유는 누가 뭐래도 회사가 노조(UAW · 전미자동차노조)에 질질 끌려다닌 탓이 크다. GM 경영진은 1970년 두 달 동안의 파업에 굴복한 뒤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1992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최고경영자(CEO)인 잭 스미스는 퇴직자 및 가족들의 건강보험 비용으로 근로자 1인당 9500달러를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10년 전의 부담액(3500달러)보다 170%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부담을 덜기 위해 정부 압력으로 3월 퇴진한 릭 왜고너 전 GM CEO가 2007년 노조를 설득해 이끌어낸 게 바로 퇴직자 건강보험기금이었다. 이제는 회사가 파산위기에 몰려 출연금을 낼 수 없게 되자 회사 소유권을 노조에 넘기는 꼴이 됐다.

GM과 크라이슬러 처리과정에서 유일한 승자는 노조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채권단 일각에서 '정치적 포퓰리즘'의 산물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정부가 특수기구를 설립해 GM을 국유화하는 게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지만 정부 · 노조 동거 모델로는 배가 산으로 갈 공산이 크다. 이래서는 이미 휴지 조각이 된 GM 주식이 다시 옛 영화를 찾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